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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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을 앞든 스물아홉 가을은 혹독한 가슴앓이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치기어린 응석에서 벗어나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강박이 그 안에는 자리했고판이한 가치관으로 좌충우돌하며 지내기 일쑤였던 결혼 생활의 회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무장하며 살아야 했다더 이상의 자기 연민보다는 질적인 삶의 풍요로움으로 곱씹고 회의하던 삶의 행태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찾는 일이 남은 생을 의연히 살아갈 수 있다고 최면을 걸며 지냈다행동한 대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한 대로 움직이며 행복을 찾는 일은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준다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주름살과 나잇살을 보면서 거울 보는 일이 두려워지고 사진 찍는 일이 망설여지는 때는 중년 들어 더해진다.

 

   수짱 만화로 유명한 마스다 미리 작가는 여자 캐릭터에 팔자 주름을 넣는 일로 나이 듦을 규정짓고 마흔이 넘은 현재적 삶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짧은 글로 담아 중년 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점을 체득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는 듯하다나이 듦은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워진다는 말인 만큼 늙어 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아 뒷걸음질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회피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상황에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는 게 우선이다가족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사는 저자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다를 늘어놓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기 위해 낯선 카페를 방문하는 변화를 시도하며 매너리즘에 젖는 생활을 배격한다보고 싶은 영화와 연극을 보고 그 내용을 곱씹으며 생각을 공유하며 사는 친구들이 있어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며 사는 저자는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친구의 일상을 받아들여 다채로운 일상을 지속할 수 있었다.

 

   20대 중반에 결혼하여 출산과 양육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여느 중년의 여성들과는 달리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행하며 사는 비혼 여성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슴에 멍울을 지고 살아야 할 일이 많았던 까닭에 자식을 키우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절감하고 수월성을 떠올린 탓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인간관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고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배려할 줄 하는 어른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지낸다. 20대에는 보이지 않던 하찮은 일상의 풍경도 고마움으로 다가와 살아있음이 축복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필요 이상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살뜰함이 배어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지 않았고특별한 미끼로 고객을 유인하는 메뉴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년이라 행복해 하는 저자를 보면서 동류의식이 더해진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다음날 말간 햇살 아래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지는 때가 있다예측 불가능한 하루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인생에서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화되어 축복이라 여길 수 있는 날이 더 많았다아이를 키우며 철이 든 어른으로 자리하여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에 젖을 때면 유쾌한 일들이 소리 없이 내게로 오는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이며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나이 들어도 친구들과 어울려 스티커 사진을 찍고 탁구장을 찾는 저자의 명랑함이 중년을 즐기며 사는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한다술을 잘 하지 못하는 이에게 무심코 건네는 한마디가 상처를 줄 때가 있는 만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은 배지 않는 게 상대를 위한 배려임을 일깨운다.

 

  나고 자란 고향은 피폐해진 육신을 달래주는 위안처로 그곳에 자리한 물건들만 봐도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다붙박이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연물과는 대비되는 생명체의 죽음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에 유한한 인생의 무상감이 자리하고 나이 들기 전에 자주 들러야 할 곳으로 여기면서도 일상에 매몰되어 살다 보니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가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들어 움직일 수 없을 때가 올 테니 운신할 수 있을 때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하며 사는 소소한 즐거움에 젖는 것도 한 방편이리라가슴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어른이 되어 책임지고 살아야할 명분에 사로잡혀 일상에서 놓쳐버린 일화들을 들추어내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중년의 모습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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