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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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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갔던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미답의 공간을 찾아 사유하는 생활이 주는 여유는 일상에 매몰되어 사느라 숨 가쁘게 지낸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여행을 꼽는다. 갈망하던 공간을 찾아 나설 수 없을 때면 여행기를 들추며 책상 앞에 앉아 책 속 풍경이 이끄는 대로 빠져든다. 낯선 공간에서 일상적 삶을 잇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저자는 러시아와 인연이 있는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선 길에서 그들의 내밀한 예술적 감성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였다. 러시아의 대표 시인 푸시킨에서부터 머리보다는 현장에서 발로 움직이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을 담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철학적 삶의 발로로 귀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유를 향한 걸음에 속력을 내어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없다는 조르바의 유언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서글픔이 신성 모독죄로 그리스 정교로부터 내쳐진 카잔차키스의 묘에 꽂힌 간소한 십자가에서 그의 의지적 행동이 낳은 항거가 벽에 부딪혀 상처로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진실로 진실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엄숙한 표정을 한 도스토옙스키의 흉상 아래 쓰인 성경 구절에서 죽음은 또 다른 열매를 맺는 숭고한 가치를 새긴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에 잠들어 있는 예술가들의 혼령이 잠들어 있는 숲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다 간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듯 묘비와 표석에서 다양성을 읽는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며 건축, 연극, 심리학, 회화 등에 관심을 두었으나 최고의 혁명을 지향하는 최상의 미학적 표현으로 형상화한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옆얼굴을 담은 부조는 몽타주 기법으로 새로운 영화 장르를 개척한 그를 조명하고 있는 듯하다.

 

   깊이 생각하여 말하고 말한 것은 반드시 행하려고 애쓴 톨스토이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면에 자리한 주체하기 힘든 육체적 쾌락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던 만큼 내면에 자리하는 동물성과 싸워나갔다는 저자의 말에 대문호에 대한 궁금증은 더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개선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를 스스로에게 주문하면서 육체노동· 정신노동· 수공 일을 할 것, 사람들과의 사귐을 일일 실천 덕목으로 삼아 깨어 있는 양심으로 살기를 지향하였다. 예술인들의 방문을 반겼던 그는 방문한 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하며 정서를 고양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였다. 작가의 지난날을 밟아가는 성지로 떠오른 야스나야 폴랴나는 자신의 신념을 펼칠 이상적 공간으로 여긴 곳을 찾고 싶은 바람이 커진다.

 

   두 자루 촛불 밑에서 독서하기를 즐긴 도스토엡스키는 고질병으로 위축되는 생활과 경제적 압박의 탈출구로 룰렛에 빠져들었고, 이에 따른 자신의 경험이 융해된 도박꾼을 창작했다. 작가가 도박에 빠져 여비를 전부 잃은 곳이 독일의 온천 휴양지 바덴바덴과 작가가 죽음을 맞은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바라며 리히텐탈러 거리를 거닐고 싶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시달릴 때 지혜로운 아내 안나는 작가를 북돋아주기 위해 돈을 쥐어주었다는 일화를 접하며 고통을 상쇄하였으리라 여기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독일연방 의회 건물인 라이히스탁 유리 돔은 밀실을 멀리하고 서로 말조심하는 독일 분위기를 투영하는 듯 의정 활동 전체를 감시받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는 듯하다. 무료로 개방하는 유리 돔을 자유롭게 걷는 이들을 보면서 민생을 생각하는 투명한 의정 활동에 부합하는 일로 비춰진다. 옛 나치의 게슈타포 친위대 본부가 있는 공포의 지형은 도처에 자리하는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의 일부에서 발견한다. 괴테하우스 뒤채 뒤로 뻗어 있는 정원에 심어놓은 다양한 식물을 보는 즐거움도 클 것이다.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여 개조한 집에서 감성적 깊이를 더하고 싶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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