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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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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극렬한 대립이 야기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분단의 고착화로 냉전 이데올로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흔한 나라에서 살아서인지 사상의 통제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잇고 있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한다.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주도 하에 살아온 시간에 익숙한 이들에게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중심을 잃고 부유하는 인생의 표적을 곳곳에 남기고 살아야 할 운명에 놓이게 했다. 국가를 우주로 여기며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이들에게 남은 회한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증오로 바뀌는 순간이 고착화되었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상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았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시장 경제로 전환된 세상에서 자유를 누릴 만한 상황이 아님을 절감하는 시간이 늘기만 하였다.

배급 쿠폰으로 생필품을 받아 사느라 냉전 시대의 사회주의가 와도 자본주의가 와도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고 회고하는 민초의 푸념에 공감하며 숱한 희생자들을 떠나보낸 상처가 깊이 자리한 이들의 엄혹한 현실의 부조리함을 자명하게 드러냈다. 평범함 삶을 살았던 이들이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뒤 달라진 세상에서 누리며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은 컸지만 현재를 충실히 사는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을 뿐이다. 첫사랑의 대상을 떠올리며 전쟁으로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생각하는 시간에는 전쟁에서 비껴나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는 낭만성을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전쟁으로 무고한 이들이 죽어가 혈육을 잃고 애끊는 형제애를 토로하는 대목에서는 전쟁의 가혹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한 뒤 모두가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부풀었다가 무위로 돌아간 시간임을 절감한 이들의 냉전 체제 전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은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반문케 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 정책으로 철옹성 같은 공산 정권은 무너지고 민중들은 자유를 얻은 듯했지만 극심해진 빈부격차로 자산가 중심으로 재벌이 들어섰고 극빈자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의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른 채 마르크스·레닌 티셔츠를 입고, 스탈린을 추앙하는 정치가로 꼽는 당대의 풍속도에 객관적인 정보 제공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나눠준 쿠폰을 들고 국영상점에서 여러 생필품을 바꾸어 생활했던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 1985년 페레스토로이카는 시행되었다. 스탈린주의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정책은 사회주의의 붕괴를 촉발시킨 정책으로 평범한 이들이 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대안을 찾지 못한 채 결핍으로 이어진 생활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정책이 시행된 이후 어떻게든 살아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고대 스파르타식 교육에 길들여진 이들이 달라진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탈린을 닮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운전수, 당원증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핍박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이 부지기수였던 점만 들어도 미래를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세상을 건설하여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이들에게 돌아온 허무감은 불행은 가장 좋은 스승이라는 말을 위안으로 지낼 뿐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감옥소 생활과 전쟁으로 지우기 힘든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니 제국의 붕괴가 희생자들을 양산하였을 뿐이다.

어떻게 살았어?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어떻게 살 수도 있어?’

라는 공포를 수반하는 질문은 대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목격한 참혹한 살상은 지울 수 없는 잔상을 남기고 가슴에 멍울을 남겼다. 선량한 사람들이 아르메니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갔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혔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게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따라야 했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은 서둘러 러시아를 떠나갔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스러져 간 영령들의 혼을 애도하며 숱한 주검을 초래한 환경을 탓하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유기체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개체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일로 귀결되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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