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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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가 한풀 꺾이고 소슬한 바람이 불어 청량감을 더하는 9월 물을 흠뻑 머금은 솜이불처럼 무겁기만 하다. 가을로 가는 길목에 2016학년도 대학 입시 수시 전형이 눈앞이라 일선 학교에서는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3학년 1학기 내신 성적을 종합하여 희망하는 대학 지원자의 서열을 정하는 일부터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작성까지 도움을 전하는 이의 고충이 커지는 때이다. 내신 절대 불변의 법칙은 입시 지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경쟁선 상에 있는 친구보다 성적을 잘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정글 같은 경쟁과 견제는 졸업하기 전까지 계속 된다.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엄혹하게 적용되는 내신 성적 체제에서 중하위권 성적의 학생이 명문대학을 갈 수 없는 현실은 명약관화하다.

   내신 성적에 따라 대학을 지원하고 학교 서열에 따라 명백히 갈리는 학교 간판에 짓눌려 실력이 뛰어나도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는 흔하여 이 땅에 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크다. 한국 사회에서 패권을 장악하며 주류에 편승해 사는 이들과는 달리 내세울 만한 것이 변변치 않은 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척박한 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살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하는 일은 특별할 것도 없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지만 지금은 태어날 때부더 규정된 위계 구조의 궤도에 지배당하는 만큼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며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음과 낭만, 예술과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공존하는 홍대 거리를 거닐며 대학을 다녔을 계나는 한국을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특별한 것 하나 변변히 내세울 게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강자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약자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고 여겼다. W종금이라는 직장에 다니는 동안 행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재미없는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 없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공간을 탈출하여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은 호주 이민을 결행하게 했다.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현재를 버티며 사는 일상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아차린 계나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한국을 떠나 행복해지기 위해 시드니로 향했다. 그녀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소통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실천으로 당당한 삶을 지향하였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은 재기 불능의 상황을 초래하는 만큼 호주 국민으로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그날까지 국외자는 시련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제대로 된 정착지조차 얻지 못한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도 없는 셰어하우스를 전전하며 호주 국민으로 살아갈 꿈을 이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자신을 단련해 나아갔다.

강남 출신으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지명과 연인 관계를 청산하고 호주로 간 계나의 만 서른이 된 날,

평생을 기다려도 괜찮아. 사랑해.’

   신분상의 차이와 경제적 간극에 부딪혀 헤어진 지명은 꿈꾸던 기자가 되어 그녀를 찾았지만 이들은 만남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문화적 차이가 배태하는 차별을 떨쳐내지 못한 채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상대를 지치게 하는 사랑은 서로에 대한 절실함의 부족으로 이별을 초래하였다. 만날 사람은 어디에서든 만나게 되어 있다는 운명론처럼 호주에서의 강퍅한 삶에 웃음을 주기도 했던 재인과 계나의 만남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관계로 발전한다. 무엇을 하고 사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하며 지낸 시간은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애국심을 강요하는 애국가에 실린 가사를 꼬집으며 고국은 대한민국 자신을 사랑했지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을 뿐이라고 상대적 박탈감을 표현했을 때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기득권 계층의 세습에 저항하여 부조리의 원인을 파헤쳐 그것을 바로 잡기보다는 한국을 피해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희망을 생각할 수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당당히 살아갈 힘조차 얻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소진하며 사는 하루살이 운명처럼 연명하는 일을 방관해서도 안 될 일이다. 소수의 행복 증진을 위해 다수의 국민들을 들러리 서게 하는 불합리한 요소를 시정하여 이 땅을 사랑하며 살아갈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 우선시된다면 이 사회는 점진적으로 나아질 것이라 믿고 싶다.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사회의 도래를 바라며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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