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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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 물에 함빡 젖어 초록이가 될 것 같은 차밭에서 손을 재게 놀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의 모습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이질감이 드는 것은 다른 시간을 지켜내느라 분투하던 시절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결핍과 불편함을 감내하여 사는 일상을 묵묵히 수용하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썼다. 일흔 둘인 어머니의 굽은 등은 찻잎을 따느라 땅바닥과 더 가까워져 간다. 허리를 펴면서 어머니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를 짓고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잣는다. 지난겨울 서둘러 세상을 떠난 이모의 49재가 지나고 녹차 밭에 와서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라며 이모의 빈자리를 위로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 아래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갈 몫은 존재하는 이의 숙명으로 비춰진다.  

   세월과 함께 먹은 나이는 청춘 시절의 열정과 에너지를 거두어 간 자리에 녹은 슬어 나타와 타협을 거부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젖는 소시민적 일상이 이어질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진 만큼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넉넉함으로 마찰을 줄일 수 있었지만 관성적 삶에 안착하는 일상에 길들여져 오고 있었다.

   ‘꿈을 업으로 삼게 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

   도끼의 생명은 예리한 날로 사물을 찍거나 패는데 있을진대 나이 들어갈수록 날선 도끼는 무디어져 제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나이 50을 앞둔 중년의 비애를 그려냈다. 가파른 세월을 살아온 궤적은 인체 곳곳에 퇴화의 무늬를 그려 불편함까지 끌어안고 지내야 하는 중년의 무게를 가늠케 한다

   자본의 위력이 세상인심 위에 군림하여 뭇 생명들을 뒤흔드는 시대에 맑은 영혼으로 자연적 현상과 교감하는 삶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물량적인 잣대로 효용성과 경제성을 따지며 시는 읽어서 뭣하냐고 냉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오염된 세상을 정화해 줄 시를 가까이 하며 지낸다는 것은 축복할 일이다.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군집 본능에 이끌려 자신을 방치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살기 어렵다는 말로 점철된 삶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헛헛함을 채워 줄 정신적 삶을 구가함으로써 내적 충일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순리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돌연한 일로 일상적 삶에 제동이 걸릴 때 이로 인한 불편함과 괴로움을 걷어내기 위해 분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쳤을 때 나온다고 노래한 시인의 작품을 보면서 바닥을 치고 온몸으로 일어서려는 강렬한 몸짓을 머릿속에 그린다. 눈물을 감추었다 술잔에 융해된 인생의 비애를 함께 마시는 가장의 고달픈 생활도 시 속에는 드러난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처럼 쇠하여 스러져 갈 유한적 삶에 감성을 회복하는 일은 스스로를 구동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

   ‘누구에게나 삶은 전대미문의 존재론적 사건

   이라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모두에게 있음을 통찰하였다. 인간관계 역시 갑을 관계로 규정하여 차별하는 일을 묵과하는 시선을 거두고 생명적 유기체에 깃든 삶의 존엄성을 회복하여 개체와 소통하고 교감하며 살아갈 당위성은 곳곳에 자리한다. 아침에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고 시를 낭송함으로써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려 노력할 때 생활 속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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