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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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생활 중 학생들이 고대하는 것 중 하나는 34일 수학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공개 입찰을 통해 여행사를 선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2014520일 녹동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는 수학여행이 잡혀 있었지만 416일 진도 팽목항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여행이란 단어조차 내뱉지 못하게 되었다. 2학년인 반 아이들은 또래의 아이들이 익사자 명단에 오를 때마다 오열하며 무책임한 기성세대들을 탓하며 무엇을 믿고 살아가겠냐며 아우성이었다. 담임으로서 아이들 앞에서 뭐라고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봄날이었다. 그 후로 시한폭탄이 터지듯 일어나는 각종 재해를 포함한 참사들은 재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기 힘들 정도였고 길을 걷다가도 이대로 땅이 꺼지는 것은 아닌지 저어하며 조심스레 길을 걸어 다녀야 했다. 기우라고 여겼던 일들이 현실에서 속출되자 이제는 어느 곳 하나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2015126일 안산합동 분향소에서 시작된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실종자 수습 및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세월호 가족 도보 행진은 214일까지 1920일 간 하루 평균 25Km를 걸어 진도 팽목항에 이를 것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목울대가 시큰해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생떼 같은 식구들을 가슴에 묻고 일상은 뿌리째 흔들려 균형 있게 살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마음을 저버리고 시간을 끌어 왔을 뿐이다. 수학여행 간다고 들떠서 짐을 꾸려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오기로 한 금요일에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려 돌아오지 못하였고 빈자리를 확인하는 이들의 슬픔은 겹겹이 쌓여 화석처럼 굳어질 뿐이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세월호 선실에 흘러나온 방송을 따르던 아이는 상황이 급변하여 더 이상 자신의 뜻을 전하지 못하게 될 상황을 예감하고 마지막 문자를 보냈던 딸은 어느 하늘 끝에서 엄마를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딸이 보낸 마지막 문자는 엄마의 또 다른 아픔으로 자리하여 가슴에 떼어내기 힘든 멍울로 남아 무거운 짐을 얹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마디를 믿고 질서 있게 있다가 보면 구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 꽃봉오리를 맺고 피어날 태세를 갖추던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 선실에 갇혀 두 발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지켜 본 엄마들은 자식들 보고 모범생처럼 살지 말라고 해야겠다며 냉소를 퍼붓는다. 어른들 말만 믿고 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기민함을 기르도록 가르치는 게 더 낫다는 말도 덧붙였다.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치고 숱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야 미온적인 대응을 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18년이나 운항된 낡은 배를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수입하여 갖은 규제를 피하고 불법 운항으로 사리사욕을 채운 청해진 해운은 비리의 온상으로 정권과 결탁하여 지금껏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5년간 해양수산부에서는 물류 발전 대상까지 4차례나 상을 주었다니 눈 먼 행위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은 죄를 둘러싸고 세월호 침몰 사건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자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미완의 가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을 뜬 시민들이 연대하여 풀어가야 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말하던 이는 사건 진상을 조사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지시를 받은 사람은 누구로부터 명을 받았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답하는 상황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은 생명이 꺼져 가는 자식들을 지켜보는 안타까움보다 더 답답하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로 처리하고 싶은 이들은 세월호 사고라 부르겠지만 이 일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뜻밖의 일이므로 사건이라 칭해야 한다는 소설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무거워진 마음을 삭이며 줄글을 읽어나갔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청해진 해운 소유주를 드러내고는 그의 묘연한 행방을 찾아 수사망을 펴고 그의 주검을 언론에 부각시켜 관심을 돌리게 한 일은 세월호 사건 진상 규명과는 요원해져가는 것은 아닌 지 염려스럽다 

 

 

 

   자본주의의 자유 기업의 전통을 지키고 사회주의에 대항하려는 사상으로 공동체의식을 뒤흔들어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이들의 편을 들어주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는 자본가들의 야비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갖은 악행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역병처럼 창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으로 치환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민영화 사업을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미치자 주체적인 사고까지 사유화해 공정 능력까지 상실하게 만드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먹이사슬 속에 인간적인 연대와 공동체적 삶은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인다. 불량국가의 공권력 부재가 낳은 대참사로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하려들지 않는 제23의 재난은 이어졌다. 철저한 조사로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용서를 구할 일은 용서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투명한 법적 대응으로 바닥에 떨어진 공권력의 위상을 바로 세워 그래도 믿고 살아갈 희망이 보이는 나라라는 긍정적인 믿음과 낙관적인 자세를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2학년으로 진급하는 아이들은 또 다시 교실 밖으로 허가받은 수학여행을 떠날 것이다. 해마다 4월이면 교정에 자리하고 서 있는 벚나무에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하늘로 밝은 분홍빛을 투사하여 세상을 환하게 물들인다. 하지만 오는 4월에는 벚꽃 아래에서 마음 놓고 웃어젖힐 수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도 미완의 해결 과제로 남은 4월 세월호 참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음울함을 더하니까……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의 회복 속에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수긍하는 전시가치의 절대화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까지 파악하려는 총체적인 안목으로 진상 파악에 나서야 한다. 해운산업과 감독 당국의 유착관계 여부, 선원들의 노동조건 및 형사적 책임, 국가재난대응체계 등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풀어나갈 때 이 나라도 재난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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