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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4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정수 ㅣ 미생 4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성장을 주창하며 내핍하는 생계형으로 밀착되어 하고 싶은 일들을 유예한 채 지내왔던 경제 부흥의 주역들이지만 주목받지 못하였던 아버지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을 끌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에 보답은커녕 부모님 속을 썩이면서 살았던 이들의 회한은 눈물 속에 용해되어 흘러 내렸다. 결핍으로 점철된 인생이라 온갖 고생을 떠맡아야 했던 세대들의 노력과 고생을 간접적으로 접할 때면 울컥해질 때가 있지만 잘했다고만 할 수 없는 세대 간의 불협화음이 자리한다. 2015년 새해는 밝았지만 언론 곳곳에서는 경제 불황과 청년 실업률 경신을 기사화하며 젊은이들이 자립하여 살 기 힘든 현실을 조명하며 한숨을 부추겼다.
3학년 1학기까지 수학한 뒤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딸과 SNS로 안부를 전하고 음성 통화할 때면 불투명한 미래로 자립하여 경제적 활동을 벌이며 살아갈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선다고 종종 말하였다.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며 갖은 스펙을 쌓기 위해 돈을 들이고 인턴 십․봉사활동 등을 벌였지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아 실의와 절망에 젖어 지내는 20대~30대의 처진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여러 변수를 해결하며 정규직으로 자리하는 날을 인생의 서막이 열리는 날로 여기며 살아가는 미생 세대들의 노력은 생고생을 떠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에 놓인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쓰러움이 더한다. 톈진에서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미생이었다는 딸은 비정규직 사원들이 조직의 일원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자존감 있는 생활을 잇는 게 녹록치 않음을 절감하여 더 우울해졌다고 해 정성을 다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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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 한 수를 둘 때마다 갖가지 유혹을 물리치고 최선의 점을 찾아 나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바둑은 방심하면 패하고 마는 현실 세계를 담은 인생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프로 입문을 꿈꾸며 바둑을 배우던 장그래는 지금껏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원 인터내셔널 영업부 3팀에 발을 딛고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절절했다. 빠른 두뇌 회전과 판단력으로 민첩하게 행동하는 오 과장,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를 보필하며 팀 내의 어머니 역할을 도맡고 있는 김 대리의 보살핌 아래 일을 배워가는 장그래의 모습은 번데기를 뚫고 나온 애벌레처럼 보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상정한 의안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영업 3팀 부원들은 휴가까지 반납한 채 신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 직장 생활을 오래 하려거든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오 과장은 체력이라는 외피가 없다면 정신력도 없다는 말로 체력 증진까지 강조하였다.
한순간도 정신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상사의 가르침대로 장그래는 회의가 열리기 전 자료 정리에서부터 회의가 열릴 때 적성하는 보고서와 녹음까지 병행하며 영업 3팀 조직원 면모를 조금씩 갖춰 나갔다. 회의록 작성을 위해 문장을 간명하게 다듬기 전 전문 용어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장을 적합한 무역 용어로 줄여 인상적인 보고서 작성을 위해 자료를 검색하고 문서를 찾아 익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간파한 장그래는 어려워도 투덜대지 않고 차근차근히 밟아야 할 과정을 채워 마침내 ‘중동 항로 관련 이슈’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돋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직의 구성원으로 동화되어 가는 동안 익숙한 생활인으로 변모해 갈 수 있음을 감지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배우는 과정이 소중함을 그래는 일깨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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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움의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가 있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미움을 걷어낸 자리에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발판이 자리하였고, 박 과장의 업무상 배임과 그의 친인척과 공모해 만든 현지 업체의 자금 횡령 등이 명백해져 담당 업무 관련자들의 문책이 따랐다. 개인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이들의 징계는 영업 3팀의 위상을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곳곳에 꽂힌 이들의 시선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적대적 관계에 놓여 구성원들 간의 연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끈으로 작용했다.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고서 작성도 못하던 신입 사원이 제 몫을 하면서 조직원의 한 사람으로 자리하여 가는 과정에 상사의 배려와 안내는 스스로 터득하며 바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