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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면허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로 거리감 없이 연대하며 지내는 친밀함이 결혼의 풍속을 이끌었지만 결혼 생활로 새로운 가정을 이뤄 살다보면 각기 다른 행성에서 살다 온 남녀가 일치된 의견을 보이며 갈등하지 않는 날은 드물다. 결혼하기 전에는 목숨을 바칠 것처럼 사랑에 목을 매던 이도 결혼하고 나면 언제 그랬나는 듯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배우자의 의견을 도외시한 채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며 살아가는 이기심에 직면할 때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취향과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따르길 바라는 마음은 접어두고 서로의 취향과 개성을 인정하며 사는 일이 마찰을 최소화하는 결혼 생활로 불협화음을 줄여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부부는 일심동체이기보다는 이심이체라는 사실을 각인케 하는 <<결혼 면허>>는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산 지 22년째 갈등 요소를 적절히 해소하며 사는 길의 지혜를 열어 준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다 보건소로 이직하여 진료를 맡아 일하는 의사 김승주가 자신의 아내를 망치로 타격해 살해한 일은 참척한 결혼 생활의 파국을 보여줬다.
‘내 인생의 불행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소.’
아내를 왜 죽였냐고 취조하던 형사를 향해 담담히 말했던 전문직 의사의 답변은 쉽게 풀리지 않는 결혼 생활의 단면을 극명히 보여준다. 남편이 죽어야 아내가 살고, 아내가 죽어야 남편이 살아나는 역설적인 결혼 생활은 너무나 다른 둘이 하나를 지향하며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 보인다.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며 살아 온 부부는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비수로 더 큰 상처를 남기며 소통의 물꼬는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인다. 부부 사이의 관계가 좋을 때 갈등은 두 사람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자리하지만 둘의 관계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갈등은 헤어질 근거로 작용한다.
양날의 칼날처럼 서로를 극악한 상황으로 몰아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고 회복 불능의 상태로 치닫는 결혼 생활은 부부 모두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가 있다. 남편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었던 아내는 남편의 영역을 침범해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세계가 많아졌지만 남편은 정신적 영역까지 짓밟히며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극단적인 방법으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충격적인 살인을 자백 받은 일로 혼란스러웠던 강 형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직을 벗어나 결혼면허학교를 설립하여 결혼 면허를 취득하는 교육 과정으로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운전을 시작하기 전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처럼 결혼면허를 취득하는 제도로 결혼 생활의 환상에서 벗어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남녀가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분을 일깨워준다.
세상의 통념이 정해 둔 스펙을 쌓아 몸값을 올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청춘들에게 결혼은 또 하나의 숙제로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을 생각하는 연령대에 이른다. 남자는 결혼을 인생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반면 여자는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남은 삶을 설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결혼으로 이혼율이 급증하는 시대에 실질적인 결혼생활교육을 받게 됨으로써 이혼율을 줄여 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결혼면허 학교 교육과정은 결혼 생활의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철과 인선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 사귄 지 꽤 되었지만 결혼 이야기가 화제로 대두되지 않아 결혼면허학교 수강생인 인선은 마음을 졸일 때가 많았다. 결혼하자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인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윤철을 답답해하면서도 결혼은 그와 하고 싶은 인선이었다.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익숙한 길을 반복하는 윤철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인선은 그가 주도하는 대로 따르며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자녀들을 지원하기 위해 결혼한 부부가 함께 살며 내야 하는 적정 비율의 행복세를 징수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결혼한 부부가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을 때 적절한 도움을 전할 수 있었다. 행복세 징수원이 가정을 방문하여 과세를 통지하고 세금 징수에 협조해달고 부탁하지만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위장 이혼을 해서라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은 만큼 이혼 후 남은 자식들을 양육하는 일은 무리수가 있어 보인다. 결혼 전에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한 뒤 상대를 바라보고 적정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친구 같은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연대의식이 필요함을 결혼 면허학교에서는 일깨운다. 조건이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여 욕망을 충족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사람과 만나 지속되는 결혼 생활을 무난하게 유지해 가는 남녀가 이상적인 부부로 비춰진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기만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상대에게 무작정 기대거나 상대를 한없이 부려먹는 행동을 삼갈 때 결혼 생활의 불행은 조금씩 비껴나 행복으로 향할 것이다. 인선이 결혼 면허 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리서치 회사에 취직하여 자기만의 공간에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여 새로운 출발선에서 인생을 설계하는 길에 윤철이 결혼 학교에 등록함으로써 함께 하는 과정이 효험을 발휘하게 되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