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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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가 흩뿌리던 날 마음까지 가라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청계천 6가 버들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부른다는 보도와 함께 전태일 반신 부조 상을 부추며 서거 40주년이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부르짖으며 화염에 휩싸인 채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자 말라며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피복 공장 재단사로 취직한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렵게 구한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임금 규정 등을 명시해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효력 발생이 없어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전태일은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수포로 돌아가 절망한 그는 분신으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캐서린 패터슨의 빵과 장미를 읽는 내내 노동 현장에서 일하며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통 속에 노동 운동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전태일이 떠오른 것은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있다는 데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육신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단란한 가족의 행복을 영위해 나갈 기본적인 생계유지 뿐 아니라 문화적인 향유를 위한 정신적인 충족까지 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힘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고용주의 임금삭감 은 각국에서 몰려 든 노동자들을 공장 대신 거리로 나가 그 사실을 알리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빵과 장미를 위해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파업은 갖은 방법으로 파업 사태를 막으려 했지만 노동자들의 연대는 도도한 강물처럼 쉼 없이 이어졌다. 일을 해도 자식들이 배를 곪고, 일을 안 해도 가족이 굶주림을 면하기 힘들다면 싸우고 굶는 게 더 낫다며 로사의 엄마는 뜻을 명확히 했다. 엄동설한에 파업 노동자들에게 소방 호스를 들이대는 경찰의 파업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토박이인 제이크 빌은 부모의 보호 아래 학교 다닐 어린 나이이지만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판잣집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함께 지낸다. 걸핏하면 아들에게 매질을 하는 아버지의 횡포는 자식을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 로렌스의 추운 겨울 밤, 싸구려 공동주택 뒷골목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잠을 청하던 열세 살 제이크 빌은 신발을 찾으러 온 열두 살의 로사 세루티와 만났다. 이탈리아계인 로사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언니, 어린 남동생과 함께 공동 주택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지만, 학교 성적이 뛰어난 데다 학교생활에 모범적인 소녀다. 그녀는 제이크 빌이 자신의 구두를 찾아준 호의로 오갈 데가 없는 그를 식구들 몰래 하룻밤 재워 줘 파업 현장을 그들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또 다른 삶의 전환점을 맞는 계기로 작용했다. 
 

  로렌스에서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공장의 이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파업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핀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파업은 위험하고 정당하지 않은 일이라며 부모님을 설득해 파업 대열에서 이탈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로사는 엄마와 언니가 공장에 나가지 않고 파업에 참여하는 가족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전전긍긍하였다. 엄마와 언니가 파업을 계속하면 자신도 파업할 것이라 큰소리를 쳐 보지만 엄마는 그 소리를 귓등으로도 안 들어 로사는 더욱 마음을 졸여야 했다. 파업으로 공장에서 일하지 못하게 된 제이크는 돈을 벌어 술을 사다주지 않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피해 이탈리아계 파업 노동자들을 따라다니며 끼니를 해결하고 가끔은 성당에 몰래 들어가 포도주와 성채를 훔치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는 결코, 우리는 결코 움직이지 않으리.’

  단호한 부르짖음을 담은 노래는 파업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기능을 하였다. 로사는 체포된 조 오브라이언처럼 엄마와 언니가 체포되었을 때를 가정하고 불행한 일들을 떠올리며 파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들끓었다. 하지만 로사의 바람과는 달리 파업을 지지하는 전국의 지원자들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설치, 파업하는 동안 돌볼 수 없는 자녀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면 기꺼이 그들을 돌봐 준 사람들이 베푼 사랑은 로사와 제이크 빌의 삶을 변화시켜 나갔다. 곳곳에서 파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보살펴 줄 사람을 모집해 이들 가정에 임시로 아이들을 위탁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지원서를 내러 간 이탈리아 회관에서 로사를 다시 만난 제이크 빌은 로사가 뉴욕으로 간다는 소리에 그도 뉴욕에 가고 싶어 신분을 속이고 동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 서명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판잣집으로 돌아간 그는 잠든 아버지 곁에 누웠다가 뻣뻣하게 식어 버린 아버지 주검을 목격하고 도망치듯이 집을 빠져 나왔다. 생전에는 자식을 괴롭히며 술로 세상을 살다 저승으로 떠난 아버지의 죽음은 제이크 빌에게는 또 다른 마음의 멍에로 남아 현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부추겼다. 무작정 기차에 올라 탄 제이크나 낯선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로사 역시 버몬트 주로 가는 길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했을 듯하다. 
 

  낯선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을 줄 때가 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며 버몬트로 향하는 기차에서 내려 제르바티 씨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둘은 제르바티 씨 부인의 따스한 보살핌에 감사하며 버몬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로사는 학교로 나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고, 문맹인인 제이크는 제르바티 씨의 석공소에서 일을 거들며 배움의 길로 나섰다. 늘 가족의 안위가 염려스러웠던 로사는 파업이 끝나 로렌스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제이크는 돈을 마련해 뉴욕으로 도망칠 궁리를 실행으로 옮기던 날 금고를 털지도 못한 채 제르바티 씨에게 들키고 말아 지금껏 가장하고 살았던 생활이 폭로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제르바티 씨는 감각이 없는 돌에 갖가지 꽃을 새겨 생명을 불어넣듯이 제이크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게 지켜볼 뿐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희망을 품고 어떤 위난(危難)이 닥치더라도 용기 있게 일어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여 과업을 이뤄가는 과정은 감동을 더한다. 파업에 동참한 이들을 돕기 위해 그 자식들을 떠맡아 아낌없는 사랑으로 부양하는 모습은 차별 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아름다운 보살핌이었다. 로렌스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사는 엄마를 아름다운 나무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는 비가 몰아치고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도 의연하게 불의에 맞서 뜻을 이뤄내는 거대한 사람처럼 비춰졌다. 제이크는 제르바티 씨 집에 남아 석공 일을 계속 배우며 과거의 좀스러운 범죄를 둘러싼 두려움에서 벗어나 빵이 넘치고 돌에서 장미가 자라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두려움을 걷어내고 불행의 늪에서 헤어났을 때 문득 쳐다 본 하늘이 더욱 투명하게 빛날 때 희망을 꿈꾸는 이의 새로운 출발은 가슴에서부터 시작됨을 알아차렸고, 가슴으로 이기는 싸움이 더욱 숭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으며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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