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옥, 가야를 품다 푸른도서관 38
김정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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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표지 위 돛을 달고 넘실대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 두 척이 보이는 ‘허황옥, 가야를 품다’를 읽으니 여고 시절 김해 김수로 왕릉으로 소풍을 다녀온 적이 생각났다. 막힘없이 탁 트인 잔디의 푸름에 싱그러움을 더하는 공간에 자리한 왕릉 대문에 그려진 물고기 한 쌍은 강한 호기심을 일으키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다. 물고기를 숭상하는 나라의 물고기가 가락국으로 들어와 환란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신앙으로 굳어진 것은 아닐는지 자못 궁금해졌다. 수로왕릉 가까운 곳에 있는 왕비의 무덤 앞 능비에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씌어 있는 부분에서 허 씨가 누구인지 의문을 품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가락국기를 토대로 배웠던 구지가(龜旨歌)에 나오는 김수로 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보자기 속 6개의 알 중에서 가장 먼저 태어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생각에 호기심을 더했다.


 

   이익을 취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해 약소국을 핍박하는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건재하고 있다. 월지족의 공격은 아유타 전역을 곤경으로 몰아갔고, 동맹 조건으로 월지족 왕자와 태양의 나라 아유타 공주 라뜨나와의 혼인이었다. 동맹을 빌미로 이제 겨우 열 살인 공주를 이국으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국왕은 락슈마나 왕자에게 공주를 데리고 아유타를 떠나라고 명했다. 공주는 정략혼인을 피해 죄인처럼 숨어 고국을 떠나 물길을 따라 새로운 터전을 찾아 길을 떠났다. 풍랑을 만나 파선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공주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쌍어 문양이 그려진 붉은 돛을

 

   달아 성난 파도를 잠재우고 한나라 변방 어촌에 머무르게 되었다. 온화한 촌장의 도움으로 락슈마나와 라뜨나 일행은 사천성 안악현으로 들어가 재물을 모으기 위해 교역에 나섰다.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라뜨나는 교역에 눈을 뜨기 시작해 질이 좋은 철기를 구입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한나라에서 금기시하던 철기 거래가 표면에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동방으로 향했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며 굴욕스러운 외교로 형 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인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란성 왕자 청예는 패배의 순간에 새로운 뜻을 바로 세웠다. 역시 위급한 순간에 파란을 겪으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다. 강하고 부강한 나라로 이민족이 쉽사리 넘볼 수 없는 새 왕국을 건설하리라는 포부를 안고 개라봉에 터를 잡았다. 청예는 아홉 부족과 화친하여 부족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갈 방법을 찾아 서력 42년 3월 아홉 부족을 통합해 가야를 세우고 수로왕에 올랐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은 되지 않으리라는 수로왕은 철을 잘 다루는 단야족의 후예답게 교역의 중심 나라로 위치를 굳건히 해 나갔다. 스스로 현명하고 강인한 여인, 사랑하는 여인을 배필로 맞아 가야국을 통치하려는 포부를 가슴에 담고 수로왕은 대부분의 가야인들이 믿고 있는 아도간 족장의 딸과의 혼인을 뒤집고 말았다.


 

   라뜨나 일행이 이끄는 큰 상단의 물품을 실은 배가 난파되어 가야에 머무를 수 있기를 간청하여 수로왕의 허락을 받아내지만 이방인들을 백안시하는 가야인들의 태도는 이국에서의 생활을 점점 힘들게 했다. 상단을 독점하고 있던 염사치 상단과 경쟁해 교역하려는 라뜨나 상단은 이익을 가야에 돌리겠다는 말로 강단진 태도를 보였다. 가야에서의 생활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야인들에게 인심을 얻는 일이 중요했다. 지혜로운 라뜨나는 어려움에빠진 이들을 도우며 조금씩 가야인들의 생활에 동화되어 나갔다. 한편 수로왕을 사위로 삼으려던 아도간 족장의 감시는 라뜨나를 옥죄는 구실이 되었지만 두려워 말라던 어머니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공주는 마음을 곧추 세워 나갔다. 고국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말을 타고 개라봉으로 향하던 라뜨나와 수로왕의 만남은 우연처럼 이어졌고, 두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해 연모의 정을 키워갔다.


 

   이를 눈치 챈 아도간 족장은 갖은 술수로 수로왕에게 라뜨나의 부정한 행위를 고하지만 수로왕은 의연히 대처해 나갔다. 왜국과의 교역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라뜨나 일행은 상단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여 아도간 족장을 번민의 늪으로 이끌었다. 아도간 족장의 딸인 아지의 사랑이 열렬함을 알고 있던 라뜨나는 가야를 떠나 왜국에 머물며 교역에 나섰지만 사람의 감정은 쉽사리 꺾을 수 없는 운명처럼 수로왕과 라뜨나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가는 듯했다. 파도와 바람을 잠재우는 파사의 석탑은 붉은 깃발처럼 재앙을 피해가는 주술적인 힘을 발휘했다. 가야인들의 터전을 지켜주길 간곡히 바라며 석탑을 도는 라뜨나는 가야인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모습으로 드러나 통찰력 있는 공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역병이 가야 전역을 휩쓸 때를 틈타 아도간 족장은 이방인들이 거쳐 간 자리에서 역병이 시작되었다며 모함했지만 수로왕은 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라뜨나 상단이 왜국과의 교역에 성공하여 가야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줬고, 그들 때문에 수군이 강해진 점을 알아차린 수로왕은 점점 라뜨나 상단을 신뢰하기에 이르렀다. 앓아누운 라뜨나를 찾아 온 아지의 술책에 빠진 적도 있지만 공주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오히려 수로왕을 깊이 연모하는 아지를 동정했다.

 

    하지만 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 어떤 힘으로도 수로왕을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던 라뜨나 공주는 그동안 숨겨 온 신분을 밝히며 수로왕에게 당당히 청혼하는 모습은 적극적인 여성상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유타에서 월지족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통보와 함께 공주의 혼례를 거행하려는 밀지가 도착했지만 공주는 이 일을 파기하고 가야 수로왕의 왕후로 남을 것임을 천명했다. 한나라 저잣거리에서 수로왕이 떨어뜨렸던 금거북을 정표로 내보이며 수로왕과 라뜨나는 서력 48년에 혼례를 거행했다. 그동안 신화 속에서만 어림짐작으로 전해졌던 수로왕 이야기를 상상력 속에 풀쳐 놓아 흥미로움과 감동을 더한 아유타 공주 라뜨나가 가야국의 국모인 허황옥으로 화한 데는 쌍어문의 역할이 컸다. 재앙으로 위기에 처한 가야를 구하고 수로왕을 보필하려난 마음이 하늘을 울리고 가야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소 이색적인 혼례로 다양성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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