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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ㅣ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평점 :
202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창궐은 인류가 이룩해 놓은 견고한 일상을 단숨에 뒤엎으며 아비규환의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한 존재 앞에서 거대한 문명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렸고,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도입된 방역 대책들은 역설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 뒤로 얼굴을 숨긴 채,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통제하며 안으로 잦아드는 고독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순간, 비감염자들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격리 수용'이라는 차가운 행정적 순서를 밟아야 했던 기억은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실존적 충격이었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기민한 대응과 첨단 방역 사업이 확산을 막는 방패가 되어주었으나, 그 이면에 자리한 고립과 공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오랜 재앙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역사적으로 재앙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와 인간의 오만을 꺾어 놓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는 단순히 과거의 전염병 창궐을 기록한 문학 작품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겪은 팬데믹의 참상을 고스란히 예언한 거울과 같다. 카뮈는 1940년대의 가상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적 변화와 사회적 해체 과정은 우리가 마주했던 코로나19의 풍경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우리는 왜 수십 년 전의 소설을 읽으며 오늘의 공포를 발견하는가. 그것은 페스트라는 질병이 단순히 생물학적 바이러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삶의 불합리성, 즉 '부조리'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카뮈가 묘사한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은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곳이다. 그곳은 계절의 변화를 나무나 하늘의 빛깔이 아니라 오직 '상업적 활기'나 '날씨의 불쾌함'으로만 느낄 수 있는, 무색무취의 근대적 공간이다. 오랑의 주민들은 특별한 열정 없이 그저 돈을 벌고, 퇴근 후 카페에 앉아 권태를 반복하며 무탈한 일상을 소비하는 데 익숙한 인물들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어둠 속에서 안일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상상을 초월하는 균열이 발생한다. 의사 베르나르 리유가 자신의 병원 복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오랑의 거리와 골목 곳곳에는 죽은 쥐의 사체가 수천, 수만 마리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돌연한 쥐 사체의 출몰은 평화롭던 도시에 불길한 전조를 드리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던 인체의 약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듯,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잔인한 열병의 늪으로 욱여넣었다. 인간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과 고열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어갔고, 평소 천식을 앓던 이들은 발작적인 기침을 연신 해대며 정신 착란과 고통에 짓눌렸다. 처음에 오랑 시민들은 이 비현실적인 재앙을 금세 사라질 한여름 밤의 악몽으로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늘어나는 사망자 수와 장례식장의 연기는 방관하던 이들의 뺨을 후려치며,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각인시켰다. 카뮈는 이를 통해 일상의 견고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폭로한다.
위기 상황이 도래했을 때, 언론과 사회 지도층의 태도는 그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된다. 본래 언론은 객관적인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이슈를 통한 올바른 여론 형성으로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공적 기능을 수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페스트 초기, 오랑의 현지 언론과 행정 기관은 주민들의 혼란과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명목하에 쥐 사건을 가볍게 보도하거나 환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써 외면하였다. 문제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기득권의 태도는 재앙의 규모를 키우는 기폭제가 되었을 뿐이다.
주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도시가 전면 봉쇄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자,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증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스트균에 감염되지 않은 '현재의 상태'에 안도하는 인간 중심주의자들은 눈앞의 비극을 타자화했다. 그들은 이 불쾌한 전염병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그저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계산하는 이기주의는 페스트가 퍼지기 가장 좋은 심리적 토양이었다. 카뮈는 이러한 방관적 태도야말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페스트라고 고발한다.
페스트의 기습으로 도시는 완벽하게 봉쇄되었고, 외부에서 온 여행자들은 순식간에 오랑에 억류되는 처지가 되었다. 신문기자 랑베르처럼 우연히 도시에 발을 들였다가 갇힌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떨어져야 하는 생이별의 고통을 겪었다. 그들은 상대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 매일 밤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직 질병이 종식되는 날 연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만이 그 극단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봄에 시작된 페스트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더욱 흉포해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 도시는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고, 절망한 이들은 도시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삼엄한 군대의 총칼 앞에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페스트는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전통적인 유대 관계를 여지없이 해체해 버렸다. 감염에 대한 공포는 이웃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게 만들었고, 개인들을 철저히 고립시켜 각자의 고독한 세계로 폐하였다. 게다가 행정 기관에서는 범죄와 사회적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야간 등화관제를 시행했고, 이는 도시의 물리적·정서적 어둠을 가중시켰다. 상업 활동을 비롯한 경제 활동 전반이 무너지면서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가난한 이들은 질병의 위협에 굶주림의 고통까지 이중으로 겪어야 했다. 재앙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잔인하게 부수어 나갔다.
그러나 인간은 재앙 앞에 그저 무력하게 무릎 꿇지만은 않았다. 관리 대상이 되어버린 인간의 죽음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한 숭고한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권력의 강요가 아니라, 건전한 시민 의식을 지닌 이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통해 빛을 발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페스트라는 거대한 부조리를 대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응전한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이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내린 '신의 채찍'이라고 설교한다. 그는 페스트의 제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헌신을 보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신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함으로 감염병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죄 없는 어린아이가 페스트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후, 그의 교조적 신념은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리외는 종교적 구원이나 거창한 영웅주의를 거부한다. 혈청 주사조차 생명의 안전을 완벽히 지켜준다고 장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며 페스트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는 사망하는 시민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 있음을 차갑게 예견하면서도, 전염병 감염 예방과 당장의 치료를 자신의 절대적인 과제로 삼았다. 그에게 반항이란 대단한 이념이 아니라, 눈앞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성실성' 그 자체였다. 그와 함께한 타루는 누구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시민 보건대'를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페스트로 인해 건강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이웃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여기에 도망치려 했던 기자 랑베르 역시 개인의 행복보다 공동체의 고통에 연대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깨닫고 보건대에 합류한다. 이처럼 다양한 실천을 통해 연대해 나간 이들의 행보는 인간이 부조리한 운명에 대항해 거둘 수 있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였다.
자비 없는 총탄과 폭력에 쓰러져 간 수많은 생명체, 그리고 원자폭탄 투하로 흔들린 인류의 존엄성을 떠올릴 때, 세상에 존재하는 이 거대하고 형이상학적인 악(惡)에 맞서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소설 속 오랑 시(市)는 기나긴 겨울이 오면서 마침내 페스트가 종식될 조짐을 보인다. 언제 끝날지 몰라 숨죽였던 페스트가 물러가자, 사람들은 그동안 마음속 깊이 켜켜이 쟁여 두었던 감정과 표현의 실타래를 풀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환호했다. 거리는 다시 활기를 찾았고, 봉쇄는 해제되었으며, 인간들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서술자인 의사 리외는 준엄한 경고를 남긴다. 그는 페스트 제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쓰러져 간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기록한 이 연대기를 통해, 우리 곁에 여전히 상존하는 페스트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리유의 영혼의 동반자였으나 종식 직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타루 역시, 자신의 수첩에 페스트 환자들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하며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인류가 뼈저리게 알아야 함을 일깨웠다. 페스트균은 수십 년 동안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속에 숨어 살아남아 있다가,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또다시 자신들의 죽음의 숙주인 쥐들을 깨워 행복한 도시로 보낼 날이 올 것이라는 카뮈의 불길한 예측은 단순한 소설 속 경고가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현대판 페스트를 겪으며 카뮈의 경고가 여전히 유효함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감염병 창궐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카뮈가 『페스트』를 통해 던진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재앙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며,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것에서 오는 공포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인간의 '연대'와 '소통'에 있다. 리외와 보건대 대원들이 그러했듯, 생명의 존엄함을 깊이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부조리한 운명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오랑의 연대기가 남긴 가르침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존적 나침반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