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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에게 ㅣ 창비청소년문학 142
주민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평범한 일상은 무너지고 무탈한 일상에는 제동이 걸려 갑갑한 시간을 보냈고, 감염병 확산을 막는 규제에 따라 부자유한 시간을 감내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과 거리를 둔 채 비대면의 시간에 익숙해질 무렵 팬데믹은 종식되었으나, 그 후유증은 남았다. 코로나 이후 직장 문화의 생활 반경은 바뀌었고, 서로 간의 갈등을 증폭해 불신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불안전함과 불확실성이 팽배해진 사회를 살아내느라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다.
<<나의 미래에게>> 속 주인공 미아는 오지 않은 미래를 살아갈 후배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만을 목표로 살지 말라고 한다. 치사율 100%에 이르렀던 어른은 더 이상 변하지 못하는 성체인 까닭에 ‘피터팬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어갔다. 미아 부모 역시 피터팬 바이러스 감염으로 독한 냄새만을 남기고 먼지처럼 사라졌다. 성장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아이들도 죽음에 이르기도 하였지만, 어른들의 치사율이 훨씬 높았다. 미성년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어른이 부재한 가운데 살아남은 아이들은 변모한 세계의 생존자로 삶을 이어야 했다.
고열로 위기를 넘긴 미아는 부모의 죽음을 채 깨닫기 전, 애증과 동경이 교차하는 언니 미래와 함께하는 생존 여정을 시작한다. 영원히 함께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준비 없는 이별에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별에 슬퍼할 새도 없이 자매는 먹을 것을 구하고 쉴 곳을 찾아 나섰다. 미래 역시 바이러스 세례를 받고 시달리다 전염병 시대의 새로운 생존자로 먹을 것을 찾아 둘은 도망을 치다 쫓기기도 하면서 본능을 드러냈다.
극한의 생활에 지친 자매는 서로에게 비수를 꽂으며 다투다 헤어졌다. 미아는 언니를 찾을 때까지 아이들만의 규율로 조직을 움직이는 벙커에 머물렀다. 벙커를 움직이는 담당 부서에서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몫만 해내면 필요한 것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몫을 해내지 못하면 벙커에 있을 자리가 없었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지.’ 벙커 내의 조직원은 오로지 생존을 위하여 분투하였다.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물건들을 전리품처럼 확보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는 아이들을 보며 사람이 조직을 움직이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떠올렸다. 피터팬 바이러스로 사망에 이른 어른은 아이를 보호할 수 없었고, 아이들은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씽크홀에 지진까지 겹쳐 위기에 봉착한 아이들은 예측 불허한 일에 맞서야 했다. 지진과 전쟁, 노란 비로 약해진 지반은 그동안 쌓은 개발의 문명 사회를 전복하였다.
언니와 재회한 미아는 남쪽 할머니 집을 목적지 삼아 길을 나섰다. 망한 세상에서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챙기다 알리나와 동행하게 되었고, 우연히 길을 가다 동네 친구 영조를 만나 함께하였다. 할머니 집으로 가던 중 식물로 뒤덮인 도시를 지나갈 때는 환각을 일으키는 향에 맞서 위기를 헤쳐 나갔다. 동행자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무기력하게 만드는 식물의 향에 취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식물로 뒤덮인 도시 생명체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하면서 목적지로 향하였다. 나비와 꽃으로 이루어진 영조의 형상이 미아의 뒤까지 쫓아와 그녀를 움켜쥐려 했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고 다짐한다. 미아는 목적지로 향하던 길에서 총상을 입은 언니를 잃고, 불안과 공포에 에워싸인 채 할머니 집에 이르렀다. 미아는 똑똑하고 예쁜 언니를 동경하면서도 미워하며 지냈지만, 이제는 혼자 남은 시간을 채우며 나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영원히 과거에 잠들 거 아니잖아. 너에게는 앞으로 살날이 있잖 아.’
유령처럼 나타난 미래는 미아에게 과거에 메이지 않고 새롭게 깨어나려면 스스로 마음을 먹어야 하고 지금 있을 곳은 할머니 집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동안 자매는 피터팬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른들이 사망하고 구세계가 몰락하면서 생존만을 붙잡고 매달려 왔다. 생존을 붙들고 살다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미래는 절망적 현실에서도 살아갈 만한 가치를 품고 살아야 함을 동생에게 알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연과 공존하여 조화롭게 살았던 전통을 저버리고 개발을 일삼은 기성세대들은 한 점의 먼지로 사라져갔고, 미래를 살아야 하는 생존한 아이들은 파멸의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죽음으로 끝이 나버리는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만한 공동의 선을 실현하는 일상을 꿈꾸며 살아야 할 당위성에서 찾아야 함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