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동주 창비교육 성장소설 15
정도상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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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숲속 길을 잃고 헤매던 날, 환한 빛이 주는 안온함을 떠올리며, 시를 통해 세상의 값진 열매를 따는 ‘소년, 동주’를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동주는 조국 광복의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에 서둘러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는 은진중학 3학년 이후 천상에서 몽규와 익환을 다시 만나 막역하게 지낸다. 동주는 생전에 쓴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 들러 마음으로 기뻐하며 사람들 마음속으로 여행한다.

문제지에 나온 시를 읽는 열여덟 살 새봄이,

‘시인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을까?’

라는 물음은 윤동주의 청소년 시절을 불러내었다. 동주의 고종 사촌인 몽규는 같은 해 동주보다 석 달 전에 태어나 학창시절을 같이 보냈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하늘의 별이 된 동주와 몽규는 평생을 동반자처럼 살았다.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동주는 은진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은 탓에 명동소학교 졸업 후 대랍자 현립소학교를 졸업한 후에 중학교 입학이 가능하였다.

소학교 시절부터 문학을 꿈꿔 온 몽규와 동주는 은진 교정에서 해성소학교를 졸업한 익환을 다시 만나 단짝으로 지냈다. 동주는 달리기를 잘하였고, 공을 잘 다뤄 축구부에 들었다. 몽규는 소학교 시절부터 지하 서클에 가입하여 명동촌 청년들의 모임에도 나갔던 이력대로 독서회에 들어 활동했다. 몽규는 북간도에 독립군이 사라져 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일본군과 만주국 자위단의 민간인 학살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철두철미한 애국자 명희조 선생님이 조직한 비밀 서클에 가입한 몽규는 민족의식으로 무장하여 나라의 독립을 당기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천재로 학습과 인문학에 두각을 보인 몽규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콩트 당선으로 필력을 인정받았다. 몽규는 전교 일등의 명예와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비밀을 안고 새로운 길로 나섰다. 익환은 숭실중학교로 편입하기 위하여 평양으로 길을 떠났고, 동주는 평양 숭실로 편입하고 싶은 바람을 꺾지 않았다. 동주는 광명중학으로 전학해 중국의 의대나 법대를 가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따르지 않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낙담하여 학업에 정진하지 못한 동주는 익환과는 달리 평양 숭실중학교 한 학년 아래에 이름을 올리고 학교생활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동주는 정지용 시인과 백석 시인의 작품을 읊조리고, 시상을 전개하는 데 관심을 보이며 시를 썼다. 윤산온 교장은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총독부 학무국의 지시를 거부하여 면직을 당하였다.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학생들은 윤 교장 복직을 요구하며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행동에 동참하였다.

일본군에 맞서 저항한 학생들의 희생은 학교 휴업으로 이어졌고, 익환과 동주는 광명중학교로 왔다. 가슴 속에 어린 아이의 자아를 품고 살아온 동주는 동시를 잡지사에 투고하고, 잡지에 실린 동시를 가족이 읽을 때면 뿌듯함에 기쁨의 미소를 띠었다. 동주는 ‘먹고 살기 위해, 더 부자가 되고 싶어, 출세를 위해’ 친일 행각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 현실에 비애를 느끼며 동시를 썼다. 그는 삿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동시를 부지런히 습작함으로써 광명중학교 생활을 버텼다.

문학적 영달을 버리고 독립군의 길을 걷고자 했던 몽규는 민족을 배신하고 밀정이 된 사람의 밀고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 석방되어 용정으로 왔다. 몽규는 공부를 마치고 문화 운동으로 민족성을 드높이는 활동을 꿈꾸며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을 굳혔다. 동주 역시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을 꿈꿨으나 의대로 진학하여 안정적인 길을 걷기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뜻을 펴지 못한 채 사위어가는 불꽃처럼 상심하는 손자를 보다 못한 할아버지의 설득으로 연희전문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동주와 몽규는 동아일보 사회면에서 연희전문학교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곧바로 입학식에 참석하였다. 둘은 북간도로 가지도 못한 채 기숙사를 배정 받고 대학 강의를 들어야 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동주는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문학부에 입학하여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독립운동 혐의를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죽어갔다. 나라의 광복을 시로 노래하던 시인은 스물일곱에 하늘의 별이 되어 생전에 누리지 못한 자유를 누리며 시를 읊고 음미하는 사람의 마음에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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