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사고 - 비우는 여백에서 만드는 여백으로
야마자키 세이타로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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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선지에 형태를 그린 선과 선 사이가 하얗게 비어 있는 수묵화를 보며 들은 미의식 중 하나가 여백의 미이다. 공간을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절제된 미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상상으로 여백을 채우며 생각을 키워가는 시간을 그린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에는 호숫가를 찾아 호수의 물을 보며 하염없이 앉았다 올 때가 있다. 너울이 없는 수면을 보며 이는 바람에 떨어져 날리는 이파리가 내는 파문에 잡다한 생각을 덜어낸다. 지니고 있는 재화들을 버리지 못해 곳곳에 벌어진 물건들을 보면 물질이 정신을 잠식하는 듯해 개운치가 않다.

   저자는 예술적 영감을 중시하는 디자이너로 창조적인 활동을 중시한다. 그는 기업의 영리적 활동을 기획하면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과업을 이뤄내는 과정에 여백 사고가 배어 있음을 적시한다. 여백 사고는 예술가의 사고와 디자이너로서 인간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전제로 실행된다.

  ‘현재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 과 같은 여백에 자신이 없으면 가득 채우고 싶어지고, 여유가 없으면 대우가 소홀해진다.’

   는 표현에 깃든 의미에는 쓰인 무엇인가를 돋보이도록 일부러 남겨 둔 공간이 여백이다. 자신과 외부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자신의 소중한 핵을 보호하며 다른 사람의 핵까지 관여하지 않을 자유이다.

    한 공간에서 오래 일하는 직장에 근무하면서 한 사람의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어 괴로움이 늘어났다. 자신의 역량에 대한 이해 없이 상급자의 허물을 물고 늘어져 그 사람의 위신을 깎으려는데 안간힘을 쓰는 동료를 보며 마음의 여유 없이 원로의 자리까지 왔나 싶을 정도라 마음의 문을 닫고 말았다. 대화로 상대의 어려움을 헤아리기에는 아집이 큰 편이라 섣불리 다가서기 힘든 상황에 체념하며 지낼 뿐이다. 적정거리 확보를 위하여 타인과 여백을 두고 지내고 있음에도 쉽지 않은 인간관계에 공감하며 심호흡한다.

   학사 운영을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학적 업무를 맡은 이가 일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하여 시간에 쫓기다 보면 일을 맡아 처리할 때가 있다. 배움은 있으나 익힘의 과정이 없어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되므로 손에 익은 이가 일을 처리하곤 한다. 담당자가 생각을 하여 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만 길어질 뿐 여백 사고를 적용하기에는 힘들다. 창의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프로젝트 형식의 업무 처리에는 여백 사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새를 만들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기다리며, 서로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여백 사고에서 찾는다.

    어쩔 수 없었다거나 대안 없이 당연한 수순을 밟았다는 합리화 대신 다른 선택지를 도입하기 위하여 여백을 두는 일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결심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관행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꼰대라는 오명을 듣지 않도록 여백을 두며 생활해야 할 일상이다. 채우지 못해 안달하기보다는 비움으로써 욕망의 완충지로 기능할 여백 사고를 놓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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