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공간 일기 - 일상을 영감으로 바꾸는 인생 공간
조성익 지음 / 북스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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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밋밋한 시간과 결별하고 낯선 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거리 위를 나돌다 집으로 무탈하게 돌아와 또 다른 꿈을 꾸게 하는 동인으로 자리한다. 걸음을 옮기다 마주한 공간이 갖는 특별함은 가슴에 남아 공명하며 삶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며칠 전 다녀 온 북유럽 여행지에서 만난 코펜하겐의 왕립 오페라하우스는 뉘 하운 운하 투어를 하면서 무주한 건물이다. 오페라하우스는 통문 유리로 운하의 반짝이는 물결을 끌어안고 있는 듯 서 있다.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실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가인 저자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생 공간을 찾아 표현한 드로잉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실었다. 저자는 나만의 속도로 걸음을 옮긴 공간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였고 떠오른 생각과 공간 주변의 소재들을 드로잉 하였다. 지치고 힘들 때 찾는 위로의 공간, 집중과 몰입으로 새로운 생각 도출의 공간, 평균적인 삶의 규모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 여행지에서 타인의 삶을 살아보며 나만의 의미를 찾는 공간 등이 즐비하다.

네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기거하던 시절 내 방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비밀이 보장되는 나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생각하고 공부하며 자신의 성장을 목도하고 싶던 시절 모든 것을 공유하는 현실이 힘에 부칠 때면 농작물 저장 창고를 찾았다. 식량을 저장하는 곳이라 쥐들이 출몰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생각에 잠기기에는 맞춤형이었다. 공간에 나를 두고 감정 변화를 읽어 자신에게 쓸모 있는 소리를 건네는 공간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몫이다.

스마트폰 사용 연한이 늘어날수록 폰에 종속되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 후회를 한다. 해야 할 일은 있는데 친구와의 소통 공간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찾는 아날로그 공간은 산만해진 정신을 모아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빌 게이츠는 휴가를 내 책을 한 보따리 싸 들고 혼자만의 독서실로 들어가 오롯이 독서와 사색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월든 호숫가 옆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공간디지털 세상과의 접속과 결별하고 내면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떠오른 영감을 찾기 좋을 듯하다.

여행하다 보면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좋은 공간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상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소시민이 동경하는 공간을 찾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으므로 주변 공간을 찾을 필요가 있다.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기에 방해 받지 않을 공간에서 나만의 세계에 잠길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기 위해 관찰자의 시선을 갖출 필요가 있다. 도시의 광장에서 질 높은 삶을 유지하기 적합한 공간은 물질적인 것보다 감성 욕구를 충족할 공간일 것이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의 행복지수는 사회적 시스템의 안전한 보장에서 나온 듯하다. 침묵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우나는 무심한 듯 넌지시 작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공간이다.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하여 자기 정화에 이르는 동네 목욕탕 같은 사우나 상용화는 오욕에 찌든 자신을 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빛나는 시간뿐 아니라 빛나지 않은 시간까지 포용하며 서 있는 건축물을 보며 ‘건축가의 공간 일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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