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 현직 약사가 들려주는 슬기로운 병과 삶, 앎에 관한 이야기
김정선 지음 / 북드라망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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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 없이 걸린 질병의 고통에 짓눌려 살다 천상의 별이 된 혈육을 그리워하며 인문 약방을 읽었다. 그가 세상을 뜬 지도 2년이 지났지만, 처연한 슬픔으로 힘들었던 시간도 무참히 흐르는 세월과 함께 엷어질 때가 늘어났다. 그를 가슴에 묻고 돌아선 날, 다음 생에는 아프지 말고 건강한 몸 받아 응급실을 찾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구애됨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행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건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아 연줄을 대어 서울 대형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았다. 두 달에 한 번은 의사를 만나 약 처방을 받느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발품을 파는 시간이 쌓여 갔다.


  대여섯 시간을 들여 내원해 예약된 의사를 만나 약 처방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분이라 허탈감은 더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서울행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하철역과 연계된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는 약을 처방받아 병원 근처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어 약을 받는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약을 건네는 무표정한 약사를 뒤로 하고 예약된 버스를 타기 위하여 걸음을 바삐 옮긴다. 병약하게 태어나 사람답게 살지도 못하고 서둘러 이승을 떠난 혈육이 더 이상 질병의 고통 없는 세상에서 지낼 수 있는 일을 위로로 삼으며 오늘도 지난 흔적이 남은 일기장을 들춘다.


  의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하는 의료의 진보가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만들어진 신화일지도 모른다는 약사의 판단에 공감한다. 갱년기를 거치며 늘어난 체중으로 성인병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복용하기 시작한 고혈압약이 있다. 지금껏 약물 복용 없이 지냈는데 2년 전부터 매일 혈압약을 삼키고 있다.


  식생활 개선과 적절한 운동으로 생활하며 지내고 싶은 바람이 컸지만, 해마다 오르는 혈압으로 약 복용을 미룰 수 없었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열망은 넘쳐나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번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고혈압에 좋다는 보조식품을 함께 섭취하며 고혈압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하였다. 자신에 대한 이해보다는 임상 효험이 있다는 말에 혹하여 지낸 시간을 돌아보며 책을 읽는다.


  약대를 졸업하고 저자는 종합병원 약제과, 의약품 도매상, 제약회사, 약국 등에서 약사로 십수 년을 일하며 에너지를 쏟았다.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저자는 개인의 자율적 소비보다는 약제 소비를 돕는 약사로 전락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집단 지성이 활발하게 피어나는 공동체를 찾았다. 약사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는 안정적인 생활보다는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바람은 사람 냄새 나는 공간에서 약 처방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약을 공급하는 길을 택하였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일리치의 책을 통해 의료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문성이 상품이 되고, 전문성에 대한 의존성이 깊어지게 됨에 따라 의료 권력이 비대해지는 현실에서 전문가 주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에 수긍하며 자신을 성찰한다.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잠을 못 자는 시간이 늘어난 직장 동료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 정도라 진통제를 상비약으로 쟁여두고 있다고 하였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서너 알을 삼키는 경우가 있다고 해 약물 의존도가 너무 높은 듯 아닌가 싶었는데 탈이 나고 말았다. 복용한 약물을 장기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지 극심한 복통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속은 메스꺼워 구토하느라 생존조차 힘겨웠다니 약물 복용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다. 과체중과 비만을 비정상으로 보며 정상 체중이 만들어낸 다이어트 시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커지는 상황에서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됨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인 식욕억제제는 약물 의존도를 높이며 중독성을 키워 정신적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불멸성은 위험을 안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예외일 수 없는 나 또한 시절 따라 변화를 겪으며 살아갈 뿐이다. 노화의 진행과 함께 늘어나는 주름을 걷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려는 마음으로 나이 들어 퇴행하는 신체 기관이 보내는 알림을 받아들여 자정의 시간으로 삼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 시간을 받아들이며 돌연한 일들 역시 소용 있기에 내게로 오는 것이라 여기며 자신을 관조하며 이해하는 데 공을 들인다. 자기 이해 없이 전문가의 판단에 매몰되기보다는 스스로 몸을 돌보며 살아갈 필요를 찾는다. 사익을 앞세워 분투하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공부하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며 연대하는 시간은 양생(養生)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믿으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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