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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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가 캡슐처럼 작은 방에 들어가 뒤척이다 잠들었다 뒷날 서방 세계로 향하였다. 피붙이는 지병을 앓고 있어 서울의 대형병원에 진료 예약 하루 전, 미리 도착해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점심을 먹고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놀다 예약한 숙소로 들어와 잤던 피붙이는 다시는 못 볼 세상으로 갔다. 질병의 고통에 짓눌려 일반인들처럼 살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보낸 피붙이를 생각하면 약 한 알로 통증 없이 살아갈 날을 고대하며 백일몽을 꾸기도 하였다.


   감각 없이 살 수 없기에 일상의 고통은 곳곳에서 머리를 내민다.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어 괴롭고, 외톨이가 된 듯하여 직장에 오는 것이 고통이라는 동료를 떠올린다. 고통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약이 나오면 좋겠다고 하여 마음이 쓰였다. 현대의학 기술로 질 좋은 약품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부작용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 상용된 진통제보다 부작용 없이 효과적인 진통제가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약물 과잉 남용으로 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진통제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회인의 삶에 고통이 사라진다. 통증을 사라지게 하는 진통제 개발로 이익을 실현하는 제약회사에 맞서는 종교집단이 생겨났다. 고통을 숭배하는 종교 집단에서는 고통만이 구원에 이르는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고통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교인으로 받아들이며 종교인들은 살아있는 존재가 느끼는 고통만이 구원에 다다를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신약 개발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제약회사와 본원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는 종교집단이 상충하며 여러 사람의 죽음에 직면한다. 교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테러범으로 수감 중인 를 취조하며 종교집단이 있었던 곳으로 데려간다.

 

   교단은 고통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집중하였다. 교단에서 자란 태는 교단의 무기가 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의미라 믿으며 성장해 태는 제약회사를 폭발 테러를 감행했다. 이로 인해 경은 인해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자식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부모의 학대로 오빠를 잃었고, 경 역시 약물 투여로 내내 고통에 시달렸다. 경에게는 제약회사를 가질 권리가 있고, 증거물인 회사를 지킬 의무가 있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절하였다. 경의 뜻을 받아들인 이사회에서는 그녀의 법적 배우자인 현이 제약회사의 경영자로 취임하였고, 경은 그냥 사라졌다. 경은 지금껏 부모의 악의에 저항하지 못한 채 온몸으로 고통을 감수하며 지내왔다. 동생에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오빠의 한마디를 끌어안고 가공할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기존의 경계를 넘어 서는 길을 찾아 나섰다.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조그만 방에 깃들어 사는 경은 현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청소와 설거지 등을 하며 9년 반을 버텼다. 일터와 거처를 옮기며 자신의 근거지 노출을 막아온 경은 부모가 이룩한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녀는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를 현실적인 욕구가 채워지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현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누며 존엄한 개체로 만나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교인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형사의 심문은 유력한 용의자로 을 지목하지만 그는 신성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교단에 도움이 안 되니 없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교주에게 충성하던 은 교주의 대리인일 뿐,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병약한 이들의 통증을 덜어주는 의사를 가장한 교주는 태와 대화하며 정체를 밝히고 떠났다. 숲속 평화로운 호숫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빛을 내던 불덩이는 교주의 다른 모습이었다. 고통으로 이지러진 사람들은 불빛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구원에 이르는 길을 따라 나섰지만 선택의 길이 막혀 자멸하고 말았다.

 

   살면서 겪는 고통의 범주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 각각의 처방을 바라지만 적법한 처방을 내리지 못한 채 고통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금의 상황이 고통스러워 더 이상 생활하기 힘들다고 여겨진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지지 않는 현실이기에 아픔과 슬픔을 수반하게 되더라도 상흔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잡은 경과 현의 결합은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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