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리커버)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반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내며 목격한 죽음은 머지않아 나의 일이 되고 말리라는 유한한 삶에 무탈한 일상의 고마움을 발견한다. 무심코 흘려보낸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일생에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삶을 관통한다. 돌아보면 부질없던 시간은 회한을 낳고, 소모된 파편처럼 흐른 시간은 재탄생을 위하여 준비할 것인 무엇인지 생각게 한다. 이 세상 마감하는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기에 현재를 살려내는 일은 가뭇없이 사라져간 시간에 대한 예의다.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인생에 절대적인 답안은 존재하지 않지만 좀 더 나은 선택을 위하여 골몰한다. 하지만 애송하는 시 가지 않은 길에서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대목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되짚어 보게 한다.


   경험으로 정보를 몸소 터득하고 지적 변주로 인생을 배우는 작품으로 문학의 힘을 발견한다. 한 편의 시를 읽기 전과 후가 달라질 때가 있음을 발견한 독자는 작품을 통해 이전보다 나은 나로 성장하였음을 알아차린다. 편협한 생각을 깨울 행과 연은 씨실과 날실처럼 어울려 생각을 확장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

  돌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접하며 백수광부의 처가 지었다는 고대 가요인 공무도하가에서의 애절함은 서로에게 걸림이 없도록 살피는 일이 상대의 죽음으로 불가한 까닭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 최승자의 시로 살면서 겪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자화상을 드러내며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삶에 고통의 깊이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연인을 위한 노래 소네트를 창작하였다니 놀라움과 반가움이 더했다. 세상에 남아 있는 글자를 다 지우고 난 자리에 사랑이라는 글자가 남았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지 않아도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시인의 사랑의 발명은 사랑마저 거래로 전락한 현실을 조명한다.


   자연사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요양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어떤 이는 죽임을 당하여 원혼은 구천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농민들의 삶의 질이 좀 나아지기를 바라며 나섰던 길이 황망한 죽음을 자초한 일이었다니 처연함은 더한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횡포를 묵인할 수 없었던 생육신 김시습의 삶을 떠올리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살아남은 자의 자기혐오라고 해석한 부분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W. H. 오든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 곁에 두는 것은 사랑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는 일반화된 상황에서 황동규 시인은 홀로 외로움으로 환히 밝혀 외로움이 우울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끌어올린다.


   혈육을 잃고 비애에 젖어 있을 때에도 먹을 것을 마련하여 입에 넣는 자신이 미워져 보기 싫다가도 산 사람을 살아야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랜다. 떨고 있는 별 하나를 삼킨 적이 있다고 노래하는 음유 시인의 한마디는 고귀한 존재로 자리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필립 라킨의 나날들은 우리들이 사는 곳이라 말하며 무의미해 보이는 나날들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날임임을 새긴다. 주어지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답함으로써 나는 생존하는 유기체인 듯하다. 윤상 덕후로 지금의 자신을 존재케 한 원천은 다름 아닌 윤상의 기묘한 음악에 있었음을 고백한 산문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시인으로 생존하는 것조차 버거운 시대에 시를 계속 쓰면서 시대와 호흡하는 최승자 시인의 고통은 창작자의 고단한 삶과 연결되어 시로 연대하는 삶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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