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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
주석 지음 / 담앤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숱한 만남과 인연의 궤 안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본다. 오롯한 정신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지 않음을 새기며 오늘도 선승의 발자취를 따라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정념(正念)으로 이끈다. 불교방송을 통해 들리는 주석 스님의 음성은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엄마의 따스한 손길로 고해(苦海) 같은 세상에 살아갈 희망의 끈을 쥐어주었다. 그 때 그곳을 가지 않았다면 현실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하고 비통해 하면서도 지난시간을 불러내 미련을 둬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문득 걸어온 발자취가
그리워질 때도 / 지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
그 때 그 상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
하지만 / 그 때 그 상황이, 그 때 그 사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일 수도 있겠지. //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
책 제목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를 보며 지난한 시간을 떠올리니 회한이 가득하다. 지금은 곁에 없는 혈육을 떠나보내고 불면의 밤을 보내던 때,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날도 이우러져 살아가게 되더라는 어른들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 상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미치자 고개를 저으며 지금 남은 사람들에게나 잘하고 살자는 말로 갈무리하며 애통한 마음을 달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간 그의 미소를 그리워하며 오늘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인생에 작은 등을 밝혀 길을 잃지 않도록 힘을 주는 인연이 있어 다행한 삶이다.
출가 수행자로 나섰을 때, 은사 스님은 말하려 하지 말고 먼저 상대의 말을 들어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던 대목이 눈에 띈다. 책을 읽고 교재 연구를 하는 공간에 유독 말을 주고받으며 가십거리를 잇는 이들이 있다. 별 소리 아닌데 살을 붙이며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말은 무성해져 소음을 만들고 원치 않는 음악을 들어야 할 정도에 이르고 만다. 옛날 있었던 일들을 들추어 자신이 가장 애썼다는 말을 내세우며 소통의 벽을 느끼게 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선배를 보면서 품위 있게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니 필가엄수(必加嚴守)라.’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시작되는 것이니 우리의 입을 엄하게 지키라는 법정 스님의 감로법은 무성한 말 숲에서 본질을 왜곡하지 않은 채 살아갈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할 듯하다. 나 역시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군에 속하다 보니 한마디 말이라도 아끼려 침묵한다. 깊이 사유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 독을 입고 내게로 와 나를 해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음을 숙지하고 지낼 필요가 있다.
대인관계 증진을 위해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로 보아야지 하면서도 용납이 힘든 사람들과도 어울려 지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는 필요하다. 대중들의 왁자한 삶에서 비껴나 뒷산을 걸으며 무심을 들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이며 긍정의 한마디를 실어 걸음을 뗀다. 돌려 생각하면 살아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흐르는 세월 따라 색은 제 빛을 잃고 퇴색한 채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를 발견하며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