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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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질료에 따라 창조되는 형태는 다르지만, 질료를 이루는 본질은 특성을 잃지 않는 것처럼 범인은 이런저런 흔적을 남긴다. 범죄의 혐의 유무를 명백히 해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수사 기관의 활동을 수사라고 사전에는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명백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미제로 남는 경우가 있다. 22년 전 서울 신촌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여 진범을 밝히려는 강력 형사 팀이 있다. 22년 전 신촌 뤼미에르 오피스텔에서 자상을 입고 사망한 여대생 민소림을 죽인 진범이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은 채 묻힐 수도 있는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여 살인범을 밝히기 위해 재수사를 한다.

 

   22년 전의 일이라 수사 기록에 남아 있는 용의자를 찾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사건 해결의 단서를 쉽게 찾을 수는 없었지만 당시 수상에서 놓친 부분들을 헤집어 재수사에 나섰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태완이법 통과로 재수사의 여지가 있는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팀은 강력범죄수사대에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수사망을 펼쳐 수사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재수사 팀은 역할을 분담하여 그 당시의 수사 기록을 살피며 수사의 허점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목도하며 놓친 부분들을 짚으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였다. 석 달 내 종료해 버린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단서로 남은 DNA검사 결과와 CCTV검사 결과만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반 여형사 연지혜와 동료들은 당시의 수사 기록을 재검토하고 누락된 부분을 살피면서 범인을 추적해 갔다.

 

  홀수 장은 밝혀지지 않은 범인이 남긴 원고로 작성되었고, 짝수 장은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담아 범인의 심경과 수사과정이 교차돼 읽는 내내 몰입감을 더한다.

  ‘그들과 달리 나는 살인자다. 나는 선 바깥에 있다.’

   범인은 형사와 대면하는 시간에도 여유 있게 속내를 드러내며 악령의 주인공 스티브로긴을 불러내 형사들보다 유리한 점에 있음을 최면 걸 듯이 말한다. 얼굴에 반점이 있는 범인은 뛰어난 미모의 재원으로 학교의 스타로 유명한 민소림과 러시아문학 조별 토론 수업에서 만났다. 문학과 서양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민소림은 그녀만의 대담하고 도발적인 해석은 수업 시간 토론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미모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큰돈이 되기도 하지만 부서지기도 쉽다고 말한 소림의 이모는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외로운 조카였음을 회상하였다.

 

   스스로 무엇을 찾는지 모르면서 뭔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복합적인 체계로 얽히고설킨 삶에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지성인의 담론을 좇아 도스토엡스키 독서모임에 함께한 이들은 대학 시절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야기하는 불안, 자의식의 분열, 생명력의 소멸 등으로 인한 고통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개인의 방식을 입체적으로 성찰했다. ‘백치소설 결말과 같은 소림의 죽음은 한 개인은 타인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 신계몽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모멸감으로 통제력을 잃은 범인의 살인을 초래하였다.

 

  ‘점박이

   소림은 대학 시절 얼굴에 반점이 있는 사촌 동생 은수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칠 때 점박이라고 부르며 그의 학습효율성을 칭찬했던 적이 있다. 사촌 누나의 칭찬에 점박이라는 말도 거슬리지 않았던 은수와는 달리 상은에게 점박이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였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이에게 점박이라는 별칭은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아 어떤 점이 박히다시피 된 사람이라는 낙인 효과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소림의 한마디에 모멸감을 느낀 상은은 그녀를 칼로 찌른 뒤, 그녀는 소림의 숨이 붙어 있을 때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119를 부를 것이라는 말을 던지지만 소림은 응하지 않았다. 한편 상은은 신계몽주의 사회에서 모멸은 중범죄가 된다며 스스로 범죄를 합리화하였다.

 

   상은의 초대로 믿음공방으로 온 연지혜 형사는 얼굴에 오타 모반이 있는 상은과 은수의 접점을 발견하고는 사실을 넘어서는 상상의 복합체로 이뤄진 현실적 서사를 가늠한다. 자신을 옥죄는 듯 몰린 살인 용의자 상은은 또 다른 살인을 감행하며 22년 전 소림을 죽인 범인으로 체포될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연지혜는 그녀를 체포하지만 씁쓸함이 더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며 자기한테는 남들과 다른 특권이 있다고 자부하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욕망이 끌리는 대로 움직인 민소림의 짧은 생을 떠올린다.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 타인에게 보내는 눈길에 담긴 한 사람의 태도는 누군가를 무너뜨려 치명적인 고통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재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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