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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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나긴 여정이라 불리는 인생길에 우연한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아버릴 때가 있다. 그 때 그 사람을 집안에 들이지만 않았어도 별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모든 사람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는 문장에는 어떤 대상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고, 어떤 공간에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미답의 공간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원청은 찾을 수 없다고 하여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지금의 삶을 견디게 하는 원천으로 자리하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소 무모해 보이더라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힘을 싣고 길 위에 서는 이가 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린샹푸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400무의 전답, 여섯 칸의 방이 있는 대저택, 100여 권의 책을 상속받은 부자인데다 아버지로부터 뛰어난 목공 솜씨를 물려받았다. 린샹푸의 어머니가 사별한 지 오년을 지내는 동안 말수가 급격히 준 그에게 매파는 혼담을 전하지만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어느 날 기력을 잃고 며칠 신세를 졌으면 하는 바람을 비치는 오누이-아창과 샤오메이-를 집안에 들임으로써 린샹푸의 삶은 변곡점을 맞는다. 아창이 여동생 샤오메이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그의 집에 기거할 수 있기를 청하여 그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데다 그녀의 청초함과 부드러운 언행에 끌려 함께 지내게 되었다. 거처가 정해지면 동생을 찾으러 오겠다던 아창은 함흥차사처럼 연락이 끊겼고, 린샹푸는 함께 지내던 샤오메이와 결혼하고 한 공간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린샹푸와 샤오메이와의 단란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녀는 조상 대대로 모아 온 금괴의 절반을 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가산을 탕진하고 오열하던 린샹푸는 천만금의 재산보다도 도둑맞지 않을 기술을 겸비하는 것이 낫다는 어머니의 말을 새기며 경목 장인으로 오래된 물건을 고치며 그녀를 찾아 나섰다. 딸 린자바이를 안고 젖동냥으로 딸의 주린 배를 채우며 원청을 찾아 나섰다. 풍랑으로 거룻배는 난파되었고 가슴팍에 있어야 할 딸이 없어져 통탄의 눈물을 흘리던 와중에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잃어버린 딸을 찾아 기쁨의 무늬를 새기며 샤오메이가 나타날 때까지 시진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잃어버린 원청이 시진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시진에 머무르고자 한 것이다.


 백 여 집에서 젖을 얻어먹고 자랐다는 의미로 붙인 딸-린바이자-과 함께 딸의 어머니인 샤오메이를 기다렸다. 시진에서 목공 린샹푸는 톱질 장이 천융량과 함께 자연 재해로 인한 민가의 피해를 복구하며 돈을 벌어들이며 훗날을 대비하여 완무당의 땅을 사들였다. 그는 샤오메이와 아청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시진에서 또 다른 인연들을 만들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외지에서 들어온 천융량과 리메이롄 가족을 만나 부부의 두 아들과 자신의 딸과 한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시진에서 목공소를 열어 자산을 쌓기 시작한 린샹푸는 이곳의 높은 인물인 구이민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혼사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시절이 하수상하여 국민혁명군과 북양군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들은 토비가 되었다.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극심한 혼란기에 토비들은 마을의 일반 백성들의 재산과 식량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사람들을 납치하여 몸값을 갈취하는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토비에게 납치된 이의 잘린 귀가 하나씩 들어있는 봉투가 도작할 때마다 양민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딸 가진 부모는 서둘러 혼인을 시키거나 유학을 보내어 화를 면하려 하였다. 토비를 막기 위해 조직한 시진 민병단은 토비들이 공격하는 총기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진의 지도자로 마을의 중심인물인 구이민을 찾기 위해 토비들과의 거래에 응한 린샹푸는 시진 대표 구출 거래에 나섰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정혼한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 린바이자와 천융량의 아들 천야오우는 연애 감정을 느끼고 서로를 갈애하였다. 딸의 마음을 알아차린 린샹푸는 딸을 상하이 기숙학원으로 유학을 보냈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이라도 한 듯 딸에게 전할 메시지를 적어 지인에게 맡겼다. 린샹푸는 구이민을 구출하기는커녕 토비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는 세상에 남겨진 린바이자를 가슴에 품은 채, 외로움에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다정한 빛으로 다가온 샤오메이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로 하늘의 별이 되어 원청을 찾아 헤매고 있을 듯하다.

 

   린샹푸 집으로 찾아든 샤오메이와 아청이 남매지간이 아닐 것이라 의심했던 일이 소설후반부에서 드러난다. 옷 수선으로 재물을 쌓은 집안의 민며느리로 들어간 샤오메이는 세월이 흘러 아청과 혼례를 치르고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시가의 재물을 훔쳐 친정 식구를 도왔다는 이유로 마음 붙이고 살던 동네를 떠나야 했다. 샤오메이를 떠난 보내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내던 아청은 부모 곁을 떠나 부부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 유랑 길에 올랐다. 그는 샤오메이의 고향 완무당에서 선뎬으로 다시 상하이로 넘어갔지만 무계획적으로 노잣돈을 탕진하고 막연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경성으로 향하였다. 아청은 어머니에게 말로만 들었던 경성에 있는 이모부에게 의탁해 보자고 하지만 이마저도 공수표에 지나지 않았다. 부부는 사실적 근거도 없이 소리를 듣고 걸음을 떼며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경성이 아닌 곳으로 발길을 돌려 린샹푸 집에 이르렀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 후 외로움과 헛헛함으로 별반 다를 게 없는 나날을 보낸 지 다섯 해가 지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를 만나 잠깐의 결혼 생활 후 엮이지 않아도 될 일에 저당 잡힌 채 기존의 삶과는 다른 생을 살아야 했다. 아청을 찾아 떠난 샤오메이는 남하하던 중에 임신 징후를 느끼고 다시 린샹푸를 찾아 딸아이를 출산한 후 어느 정도의 시일이 지나자 다시 아청에게 돌아갔다. 린샹푸는 인생의 마감 날을 예비하여 딸에게 엄마를 찾아주려는 인생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샤오메이의 궤적을 찾아 낯선 길 위에 섰다. 원청이라는 곳이 무형의 공간임을 알았지만 샤오메이를 찾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에게 남겨진 사랑은 생의 마지막까지 찾고 싶은 샤오메이의 흔적에라도 닿고 싶은 정표였다. 샤오메이와 린샹푸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멀리 달아난 것처럼 원청은 닿을 수 없는 고도와도 같은 존재인 듯하다. 굳게 잠긴 문의 자물통을 열어줄 숙명적 열쇠를 찾아 떠난 린샹푸의 유랑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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