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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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합집산의 공간인 기차역은 철로를 이용하여 목적지를 찾는 이들이 경유하는 공간이다. 만남의 기쁨과 이별과 슬픔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병영 체험을 떠나는 친구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그들을 배웅하러 자주 찾았던 기차역이다지금은 없어진 병영체험이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압적으로 이행하는 병영체험이라 발걸음이 무거운 친구들을 위로하며 안녕을 고하기도 하였다. 사사로운 감정이 서려 있는 기차역은 하얼빈 소설을 읽는 내내 동양평화와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헌 신짝 버리듯 내던진 안중근 의사의 고매한 정신이 깃든 의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은 1906년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으면서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토히로부미를 초대 통감 자리에 앉혔다. 일본 제국에 의해 설치된 통감부는 한국의 정사(政事) 및 행정 등을 장악하고 통치하여 조선인들을 주권을 앗아 일본의 식민지로 삼으려는 야욕을 멈추지 않았다. 항일 운동을 벌이던 의병들은 격전지에서 죽어 나갔고, 전투에서 참패하여 자결하는 이들과 적들에게 잡혀가 생명을 잃는 이들이 늘어났다. 일제의 만행에 맞서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여 지금 발 딛고 사는 공간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은 민초들의 바람은 생명의 불씨마저 꺼뜨리고 말았다.


   이 땅에 결박되어 있으면서도 땅 위에 설 자리가 없다고 탄식하던 안중근은 이토가 통치하는 땅을 벗어나 살 길을 찾아 나섰다. 평화와 박애를 모토로 하는 천주교를 믿는 가정에서 나고 자란 중근이 꿈꾼 평화로운 세상 건설을 위해 명분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누구나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며 자신의 꿈을 펴나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랐을 것이다. 동적인 기질이 강한 응칠의 기운을 좀 눌러주기 위하여 중근으로 개명했을 정도로 중근은 노루나 꿩 사냥을 즐기며 큰일을 도모해 왔는지도 모른다.


   집안에 닥쳐오는 위해를 장남 중근과 의논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하던 아버지 안태훈의 죽음은 중근이 친숙했던 세상과의 결별을 예고하였다. 굴욕적인 역사의 횡포에 맞서 역사의 적을 응징하겠다고 결의한 안중근은 조선의 독립을 보호하는 일에 나섰다. 극동 한인사회에서 인망이 높은 이석순을 겁박하여 백 루블을 빼앗은 중근은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를 저격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19091026일 아홉 시 이토 일파를 태운 특별열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토 살상을 위한 걸음을 떼었다.


   거사를 준비하며 우덕순과 함께 이발소에 들러 머리 손질을 하고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은 뒤 사진을 찍었다. 한 사람의 역사가 끝이 났음을 알리는 영정 사진을 의식하여서인지 둘은 말없이 사진을 찍고 하얼빈 역으로 향하였다. 고려의 패망을 알리는 만월대 사진으로 이토의 인상착의를 몇 차례 확인한 중근은 이토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고, 중근이 쏜 세 발의 탄알은 이토를 명중하여 그의 숨통을 끊었다. 단말마의 고통 속에 현장에서 죽은 이토의 부음은 조선에까지 흘러 들었고, 이토의 장례는 도쿄에서 거하게 치러졌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은 일본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말하며 기뻐서 제국을 따르는 열복(悅服)을 주창하던 이토는 숨을 거두었다.

 

   대련을 쳐부숴 차지한 이토의 나라는 대련을 발판으로 하여 하얼빈으로 진출하였던 만큼 이토의 세상을 깨부수기에 적합한 공간은 하얼빈 역임을 직감한 중근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서 거사를 일으킨 중근이 러시아 헌병들이 던진 물음에, ‘코레아 후라를 힘주어 열창했다. 일본 영사관에서 미조부치가 신문할 때에도 중근은 짧은 한마디로 신문의 포위망을 무너뜨리는 힘을 보였다. 중근은 공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을 때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궤적을 담은 책을 저술하며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의연하였다.


   중근이 저술한 동양평화론에서 대한독립’ ‘동양’ ‘만국공법등의 의미를 담은 문장은 그가 생전에 천주교도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에 대한 생각을 늘 가슴에 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만국 공법을 들어 일본군 포로를 석방해 줬다가 일본군의 역습으로 아군이 목숨을 잃은 일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평화주의자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코레아 후라를 외치며 일본의 압제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하려던 평화주의자 안중근의 혼백은 약소국을 침탈하여 제국주의화하려는 국가들을 응징하려는 기류를 흘려보내고 있을 듯하다. 어지러운 세상에 영웅이 나타나 난세를 평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중근 열사의 의로운 삶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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