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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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움직여도 등골에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에 열을 식히려고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소설 속 옥수수 수염차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기보다는 편의점을 찾는 데서 책 한 권이 갖는 힘이 상당함을 자각합니다.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쉼터로,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찾는 회복 탄력 공간으로 자리하는 불편한 편의점 점주는 녹록치 않은 시대를 헤쳐 나갈 용기를 줍니다. 전염병 창궐로 불확실한 오늘을 사는 대중에게 위로의 공간을 내어 준 선생님 고맙습니다.


  교단에 선 지 32년 남짓,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면서 은퇴 후를 생각합니다. 동영상 문화에 익숙한 10대를 이해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회의합니다. 요즘 애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푸념하면서 이들이 처한 시공간을 망라한 환경적 차이의 틈을 메꾸려 들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연결 고리를 찾아 상대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반문하며 침묵하는 가운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아이들 역시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같은 존재라는 문장이 갖는 의미를 떠올리며 관계 지향적인 일상을 다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역사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염 선생님의 열정이 따스함으로 밀려듭니다. 선생님은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분홍색 파우치를 찾아 준 노숙자에게 주린 배를 채워줄 도시락을 내어 주며 정을 나누었습니다. 푸른 언덕-청파동-에 위치한 ALWAYS 편의점은 희망의 빛을 투사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공작소였습니다. 선생님은 퇴직 후 편의점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는 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시간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을 줄 수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편의점 밤을 책임지던 성필이 근무 환경이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자 야간 근무자를 구할 때까지 선생님은 잠잘 시간을 놓친 채 ALWAYS를 지켜야 했습니다. 독고 씨는 편의점을 찾은 젊은 아이들에게 해를 입을 수 있는 위기에 놓인 염 여사를 구해줬습니다. 마치 정해진 시간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게 해준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은 독고 씨가 과거의 삶에 대한 답을 찾기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선생님은 그가 현실을 타개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선생님은 편의점 밤 근무를 독고 씨에게 의뢰하며 술을 끊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학생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교육자의 사명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해 숙연해졌습니다.


  편의점 오전을 책임지고 있는 선숙은 말을 더듬고 행동이 굼뜬 독고 씨가 달갑지 않아 여러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감내하는 눈치입니다. 교회 성도인 선숙의 이해 불가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 퇴사 후 영화를 제작한다며 나섰다 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헛된 꿈을 좇아 준사기 행각을 벌이던 선생님의 아들 역시 불온한 삶을 보내고 있어 우려가 클 것입니다. 자식은 뜻대로 안 된다고 하지만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철이 들지 않은 이들이 많아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제 역할을 다하며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그릇을 채워가는 일은 그들만의 몫일 것입니다. 주행 중 안전거리 확보로 사고를 방지하듯 자식들과도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선생님의 배려는 독고 씨를 변하게 하였습니다.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영업직에서 한눈 한번 안 팔고 경력을 쌓아 왔지만, 회사에서는 굴욕적인 대우를 받고 집에서는 소외감을 느끼던 이에게 편의점 야외 테이블은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 그만인 곳입니다. 독고 씨는 단골에게 술 그만 마시라고 옥수수 수염차를 건네며, 추위를 녹여줄 열풍기를 틀어 온기를 더하는 행동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배우로 은퇴한 극작가 인경은 독고 씨와의 만남으로 차기작을 필사적으로 완성하여 새로운 걸음을 떼었습니다.


   간이역처럼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갖는 삶의 애환은 누적된 일상이 쌓일수록 늘어날 것입니다. 자본의 물성이 깊이 자리하는 시대, 인간적인 공명이 힘들어지는 세상에 불편한 편의점은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위로의 공간인 듯합니다. 선생님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오후 시간을 책임지던 시현에게는 독고 씨의 변신을 돕도록 유도하였고, 시현이 더 나은 편의점 점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도 그녀를 응원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선생님은 술을 끊고 뇌가 활성화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독고 씨가 의사로서 살던 때를 떠올리며 시민의 일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유도하였습니다.


   네 캔 만 원에 판매하는 맥주()를 살 때 외에는 거의 편의점을 찾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선뜻 편의점 음식을 취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안고 들어서는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점원의 한마디를 상상하며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는 손님을 맞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새기며 인사로 응대합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꿈꾸게 하는 삶의 가치는 현재에 더 충실한 삶의 양분을 제공합니다.

 

   어둠이 흑점을 지나는 시간에도 불을 환히 밝히고 구매자를 기다리는 편의점의 불빛이 주는 안도감은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존재에게는 충전의 빛입니다. 새벽까지 근무하느라 몸은 고단하여도 경제 활동으로 자활을 돕는 편의점에서의 시간은 소통과 휴식으로 채워지는 정거장 같은 곳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선택하는 주체적 결정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힘을 줄 수 있음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웁니다. 기억을 되찾은 독고 씨는 한국의 코로나19 진원지인 대구로 의료 봉사를 떠나 새로운 길 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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