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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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수영복을 입고 양팔을 벌린 채 끝 간 곳 모를 푸른 물결 속으로 뛰어드는 한 남자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을 마감하려는 이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푸른 물결 아래로 몸을 던지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나서는 강렬한 몸짓으로 비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손을 댄 사업마다 실패하여 빚더미에 올랐고, 집으로 돌아갈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홀로 오피스텔을 전전하던 성곤 안드레이아는 피폐해진 영혼을 돌볼 여력을 잃었다. 영혼이 사라진 몸뚱이를 처리할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강에 투신하려 했던 선택이 실패하자 가족과 한참 멀어진 뒤에야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커다란 일탈 없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성곤은 수순대로 대학에 입학하였고, 대학 졸업 후 자동차 부품 회사에 입사하여 영업 업무를 맡았다. 그는 나우누리 게시판에서 설전을 벌이던 여성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불꽃같은 사랑 끝에 결혼하였고 이듬해 딸까지 낳았다. 조금씩 자산을 쌓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느끼면서도 밋밋한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그는 회사 내의 평가와 실적은 좋았지만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며 회사의 소모품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행하였다. 직장을 그만 둔 성곤은 어떤 일을 호기롭게 벌였다 뒷수습은 남들이 하게 만드는 데 이골이 났고, 주도면밀하지 않은 일면은 번번이 사업 실패를 불렀다. 급기야는 아내와 딸 곁을 떠나 혼자 지내는 외로운 별거가 시작되었다.

 

   바닥을 치고 일어설 용기조차 갖지 못한 성곤이 자멸의 길을 걷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혼몽한 의식을 일깨우며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는 거창한 데 있지 않았다. 딸을 만나는 날을 기억하지 못한 채 지내다 아내에게 몹쓸 소리를 듣고 자책하며 휴대폰 속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발견했다. 할 수만 있다면 회사를 그만 두기 전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내의 안온한 품속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우연히 듣게 된 변화라는 단어에 마음이 동한 그는 작은 습관 하나라도 고쳐보기로 결심하였다.

 

  ‘지금이 네가 정말로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마음속 그림자가 이끄는 대로 성곤은 실패의 이력서를 채워갔다. 나이와 사회적 위치, , 자신의 객관적인 메모가 이어질수록 참담함은 더했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적막한 오피스텔로 돌아와 12년 전 사진 속 그가 했던 포즈를 취하며 허리를 곧게 펴 자세를 바르게 하는 생활을 위해 움직였다. 생계를 위해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다 보니 그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신체의 무언가를 먼저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다음은 인생의 희로애락에 따른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에 열중하였다.

 

   성곤은 지금껏 감정을 표현하는 일보다는 무표정 일색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표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까이 있어 존재의 소중함을 생각지 못한 채 배려하지 않은 소중한 가족을 떠올리며 무심한 자신을 질타하며 가족 간의 유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조그마한 변화가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발견한 성곤은 인생의 긍정적인 변화와 대면했다. 양질의 변화로 이끈 변화의 동기를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그는 지푸라기 프로젝트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창조적 콘텐츠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사연을 접수받아 채택된 사연의 주인공을 지푸라기, 지푸라기의 도전을 지켜보며 함께 응원해주는 사람을 튜브로 이름 지어 서로를 응원하며 새롭게 일어서는 삶을 응원하였다.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나락에서 헤어나기 힘든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성공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물에 빠지지 않는 튜브를 타고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를 때까지 삶의 철학을 정립하여 개인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바닥을 치고 만다. 언제나 초연한 태도로 매 순간 충실한 박실영 학원 차량 운전기사를 보며 삶의 불가해함을 조금씩 알아차린다. 삶을 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삶에 굴종하지도 않는 운전기사를 보며 성곤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벗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유튜브를 진행하며 불특정 다수의 관심 속에 자본가의 투자를 받기도 하였지만 행운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성공가도를 달릴 것 같은 환상이 깨지면서 위축된 현실과 맞닥뜨린 성곤은 또 다른 변화를 위해 꿈틀거린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곧추 세우기 위해 변화의 동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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