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 유럽 도시 기행 2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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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가려 했던 북유럽 여행을 순조로이 다녀왔을 테다. 20177월 하순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를 열흘 일정으로 돌며 일상을 벗어난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스물에 만난 우리는 50 초입에 구상했던 여행지를 찾았다. 체력이 뒷받침될 때 여행은 떠나야 하고 해가 긴 여름에 우리는 길 위에 섰다. 6년 전 추억을 불러내 다녔던 거리와 봤던 건축물 등에 얽힌 역사와 삶의 궤적을 관통하는 유럽도시 기행2’에 나오는 네 곳을 보니 반가움이 밀려든다. 도시 형성에 큰 업적을 남긴 세계사적인 지식을 동원한 기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허공에 흩어질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한다.


   저자는 링을 따라 걸으면서 도시 안팎을 살핀 뒤 버스나 트램을 타고 외곽의 명소를 찾는 방식으로 길 위에 섰다. 길을 따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빈의 역사 공간과 건축물이 포진되어 있는 슈트라세를 방문했다. 종교 행사와 국가 의전을 연 권력 공간으로 자리한 슈테판성당은 빈이 사랑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왕가의 영묘가 있는 슈테판 성당은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이 혼재된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우뚝 솟아 위용을 드러낸다. 슈테판 성당 북탑인 독수리탑에는 노획물인 청동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을 걸어 평화로운 세상을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주로 혼인을 통해 보헤미아, 헝가리,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손에 넣었다. 요제프 황제의 부인인 시씨는 언니 맞선자리에 들러리로 갔다 황제 눈에 들어 열여섯에 요제프와 결혼하였다. 이모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였고 자식들을 빼앗아버릴 정도로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국사를 돌보느라 바쁜 황제는 여배우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시씨 황후를 외롭게 하였다. 모든 것을 용인하고 궁을 나온 시씨는 빈을 떠나 생존을 위해 자유로운 길을 찾아 여행자로 나섰다. 호프부르크 궁전에 시씨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권력형 명사(名士)가 되었지만 행복한 왕궁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망 좋은 테라스를 가리키는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키스 원본이 전시된 곳으로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오스트리아 현대 미술품이 전시된 상궁과 중세 미술품과 바로크 미술품이 전시된 하궁을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다. 넓은 대지에 크게 조성된 정원에는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 매혹적인 공간이다. 이 궁전에서 미···소 외무 장관들이 오스트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니 역사적 의미가 큰 궁전이다.


   빈 중앙역에서 부다페스트 동역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로 이동하였다. 다뉴브 강변에 있는 건축물 중 걸작으로 꼽히는 네오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은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국회의사당의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국회의사당의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다니 유람선을 타고 국회의사당의 야경을 보니 황홀하였다.



   헝가리의 국부(國父)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슈트반 사망 후 내전으로 세력이 약해졌고, 13세기 중반 몽골 침략으로 머저르 왕국은 인구 절반을 잃었다. 이후에도 헝가리는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략과 지배 아래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1990년 처음으로 독립된 민주공화국이 되었다니 이민족의 침탈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나치의 만행과 소련 공산당의 폭정을 기억하기 위해 테러하우스를 지어 불행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도나우 강변의 구두는 잔혹하게 희생된 유대인 학살 현장의 일면을 구두로 재현하였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여 하나의 도시로 통합하는 길을 연 세체니 이슈트반은 10년 공사 끝에 세체니 다리를 만들었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기준하여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 펼쳐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이 있다. 언덕의 자유기념탑은 소련군이 나치군대를 쫓아내고 헝가리를 기념해 만든 조형물이다. 유럽 정치와 정세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최초의 헝가리인 언드라시는 머저르 공화국의 기초를 만든 그를 기념하는 동상을 보며 시씨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해진다.



   9세기 말 보헤미아에 최초의 왕국을 건설한 체코는 14세기 룩셈부르크 가문에 지배권이 넘어갔고 이후에는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지배권이 넘어가 이민족 침략으로 얼룩진 역사의 획을 그었다. 종교개혁가 얀 후스는 부당한 특권을 누리며 민중을 억압하고 부패를 저지르는 종교권력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퍼부으며 민중과 소통하기 위해 체코말로 설교했다. 그는 보수적 종교 세력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지면서도 종교 개혁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후 민중들이 후스파로 집결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카렐교의 성 바츨라프 기마상은 바츨라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바츨라프는 보헤미아의 자존을 지키려고 외세에 대항하다 사악한 동생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후 체코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얀 팔라흐의 새벽 분신은 소련침략에 항거하며 제코슬로바키아의 자주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다. 위대한 작품을 남겼으나 외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다 간 카프카의 집을 들렀을 때, 작은 공간이 자아내는 음울함은 그가 생전에 말하지 못했던 생각을 담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 내용이 떠올라 더 커졌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 작센주의 바로크 도시이다. 내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엘베의 물과 바위 절벽, 연봉과 우거진 숲은 알프스의 대용품처럼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라니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드레스덴의 랜드마크인 성모 교회는 부패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루터의 공개 비판이 종교개혁운동의 산실로 자리한다. 높고 날카로운 첨탑 아래 정중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신에 대한 외경심을 더한다. 드레스덴 최고의 궁전인 츠빙거 궁전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인공미보다는 자연적 조화를 중시한 궁전으로 볼거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렘브란트, 뒤러 등의 작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도자기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니 독일 여행 중에 들르면 좋을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2, 연합군의 드레스덴 집중 폭격으로 2만 명 이상 사람들의 목숨과 함께 젬퍼오퍼도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후 문화 예술의 도시답게 많은 예술 애호가들이 역사적 건물의 복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지금의 젬퍼 오퍼가 다시 살아나 세계적인 오페라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특별한 외관 못지않은 역사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도시의 존재감은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빚은 역사의 궤적으로 이어진다. 건축물이 완공되기까지의 서사는 공간을 넘어선 시간 속 인물이 머릿속에서 그린 교량 설계를 맡기고 세치니 다리가 완공될 때까지 쏟은 정신적·물질적 지원은 역사물과의 조우를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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