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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빵을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이른 아침 갓 구운 빵을 내놓는 빵집 앞을 지나면 단 내음과 구수함이 어우러진 향에 끌린다. 한 빵집을 자주 찾다 단골이 된 동료는 아침에 들른 빵집에서 시식용 빵을 받아 왔다며 함께 맛보라고 한다. 통밀 식빵에 견과류를 넣어 만든 빵이라 빵을 씹을 때마다 고소함이 입 안 가득 밴다. 견과류가 든 빵을 한 점 베어무니 생전에 견과류를 좋아하는 혈육이 떠오른다.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채 생사의 경계가 뚜렷한 이승에서 그리움 담아 망자를 생각한다. 시간 되감기가 가능한 타임 리와인더를 활용해 세상을 떠난 혈육을 살리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현재의 시간을 상실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다.
목적지를 향하느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은 청량리역에서 여섯 살 소년은 엄마에게 버려졌다. 잠깐 다녀오겠다는 엄마는 종적을 감췄고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1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여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기억 속의 엄마는 끝내 죽음의 길을 선택하였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신봉자인 아버지는 캐릭터 완구 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일하느라 분주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겉보기에 별 일이 없는 가정을 바랐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부모 역할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자식을 키워내는 일도 힘든데 집안일에 젬병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건사하며 살아내기란 녹록치 않다. 여섯 살 청량리역 인파 속에서 동화를 잃은 나는 사랑받으며 성장하고 싶은 바람마저 품지 않으며 지내왔다. 여덟 살 딸 무희를 데리고 새 가정을 꾸린 배 선생에게도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다. 새 엄마가 자식을 불공평하게 대하며 경우 없이 처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배 선생은 티 나지 않게 의붓아들을 괴롭혔다.
‘여긴 내 집이고 여기 안주인은 나야!’
공간 확보에 대한 욕망이 큰 배 선생은 고압적인 태도로 내상만을 목적으로 의붓아들을 괴롭혀 왔다. 집에서 머무를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새 엄마와 눈을 마주칠 수 없어 바닥에 고개를 두기 일쑤였다. 집은 안락한 휴식을 제공하기는커녕 일상의 굴레로 나를 옥죄어 마을 더듬는 버릇을 낳았다.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선택의 여지없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배 선생은 딸 무희가 성범죄의 피해자로 법정과 경찰서를 오가며 진술을 반복하다 내용을 번복하여 약이 오를 때로 올라 성추행 범이 누구냐고 하였을 때 무희가 가리킨 대상은 의붓오빠였다.
엄마의 닦달에 의붓오빠를 가리킨 무희의 손가락질에 성추행 범으로 내몰린 나는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들을 떠나 어딘가로 달아나야 했다.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는지 가늠키 힘든 시간에 떠올린 공간은 ‘위저드 베이커리’였다. 저녁이면 방에서 먹을 만한 빵을 사오느라 들른 빵집으로 피신하였을 때, 점장은 나를 오븐 속으로 들여보냈다. 갖은 재료를 넣어 만든 반죽을 열기로 구워 내는 오븐 속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운을 담고 있다. 열여섯 살의 나는 새 엄마의 횡포와 아버지의 냉대를 피해 위저드 베이커리로 숨어 들었다.
파우더처럼 흰 얼굴에 꽁지머리를 한 마법사 점장이 24시간 불을 켜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나의 새로운 삶은 시작된다. 나의 딱한 사정을 알고 빵집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한 점장과 파랑새의 도움으로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마법 빵 주문을 도왔다. 주문하는 이들과 모든 마법은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만 회원 가입을 하라고 주문하지만 의뢰자의 태도는 일관되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일을 벌여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고 나서야 마법사의 농간에 놀아나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고발하는 사람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홈페이지에 싣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마저 타인의 탓으로 전가하는 경우가 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며 마법을 부리는 빵 한 조각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이들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욕심을 낸다. 지척에 있는 동네빵집에서 생활하는 자신을 찾지 않는 아버지와 새엄마를 향한 무관심에 반격하듯 꿈속에서 나는 말을 더듬거리지도 않고 잘했다. 점장과 파랑새에게 꿈 이야기를 전하였을 때, 둘은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처럼 빵집을 옮겨야 하는 이유를 들어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아픈 데를 어루만지는 처방약처럼 마법의 재료를 써서 만든 빵 한 조각에 담긴 온정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이들의 상처를 달래주는 묘약이다. 경계를 넘어선 불순한 의도가 빚은 부작용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 용기와 힘을 준다. 주머니 속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 자신을 환대해 줄 사람은 없을 수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 회피하기보다는 그들과 부딪히며 살아갈 용기를 낸다. 무희의 성추행 범으로 밝혀진 아버지는 형을 살고, 배 선생과 무희는 집을 떠난 자리에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