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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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리를 걸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줄곧 학교를 다니고 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 삐걱거리는 복도를 지나 도착한 교실은 사각 틀로 규격화된 모습이라 낯설었다. 처음 만난 옆 동네 아이들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인사치레의 말을 걸었다. 가슴팍에 접힌 손수건을 한 장씩 달고 서로의 이름을 말하는 풍경이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덟 살. 처음 발을 내디딘 학교라는 곳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학교 뒷산으로 가 식물을 채집하고 무더위를 피해 개울에 발을 담그는 여유가 있었다. 60명이 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행동에 제약이 있다는 불만보다는 함께여서 웃을 일이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짝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였고, 둘이 머리를 뛰어 뜯어도 해결이 안 될 때에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협동학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때 맞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기보다는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하여 학교 가는 길이 즐겁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수포자로 전락하여 자존감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 단어를 발음하며 익히다 보니 자연스레 발음기호를 읽을 수 있게 되어 스스로 뿌듯해하던 중1 시절과는 달리 무능감이 늘어난 자신과 만나는 일은 자괴감마저 들었다. 상급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읽기 시작한 문학 전집은 교실 밖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하였다. 덕분에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단에서 십대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며 산 지 32년이 지났다.

 

   교과서로 수업하면서도 교과서에서 다룬 내용을 심화할 만한 교과서 밖의 책들을 곁들이면서 앎의 영역을 확장하여 지적 호기심을 더한 생활은 값진 경험이다. 학자의 삶을 재조명하여 그가 걸어온 인생의 궤적을 찾아가는 과정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도 가능하지만, 문답 형식으로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투박하면서도 야성적인 질문자의 물음에 생태학자는 놀이처럼 배우며 가르치는 삶 속에 깃든 공부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한때는 수포자(?)이기도 했고, 서울대학교 동물학과에 다녔던 최 교수가 미국 유학을 통해 공부의 재미를 한껏 찾아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유학 중에 만난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배움과 성장이 있는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아들 양육으로 학업을 중단한 아내를 독려하여 하던 공부를 지속하게 하면서 아들을 함께 돌보기 위해 먼저 집안일을 행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주면서 책 읽는 습관을 붙여 준 의미 있는 활동은 훗날 아들이 벤처 일을 하면서 살아갈 토대를 마련해 준 일로 가늠될 정도다. 저자는 대학교수를 택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지 않겠냐고 아들에게 묻지만, 아들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며 격려해줄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을 남이 좋아하는 것에 끌려 다니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설 용기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창의력 신장 교육을 주장하고 있는 교육계이지만 현실은 고답적이다. 평균적인 생각을 넘어서면 편견을 갖기 일쑤고, 일반계고교에서는 여전히 SKY대학교 진학률을 입시 성공의 잣대로 삼고 있으니 골수에 박힌 입시 서열화를 넘어서지 못하니 안타깝다. 고등학교 근무 당시 독서력으로 공부 내공을 쌓아 독보적인 1등을 유지하는 여학생에게 교사들 열에 아홉은 의대 진학을 위해 이과를 선택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문과를 선택해 공부하며 S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해 학보사 기자와 학회 활동 등 여러 경험을 쌓고 있다는 후문을 들은 적이 있다.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찾아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하며 그 속에서 앎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길이 울퉁불퉁한 길이더라도 좋아서 걷는 길이길 바란다.


   창의력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 말하며 창의력 신장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강조하는 현실에서 학자는 환경과 인간수업을 할 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창의성 발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듯했다. 학생들은 소위원회를 결성해 수립한 기획에 걸맞은 현안을 해결하며 최종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하는 수업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일부터 시작한다. 물상들을 찾아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며 호기심을 충족하여 앎의 세계를 열어 줄 강의도 들어 심층적인 이해를 도와야 한다. 관심 있는 일을 행하는 전문가를 찾아 궁금증을 해소하며 용기 있게 나서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는 능동적인 태도는 소심한 이들에게는 작은 변화라도 추구하며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개인의 역량만을 신장하는 형태로 변질된 교육 현실에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실천은 작은 규모의 학교에서부터 시작될 때 희망적이다. 서로 협업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연대하는 힘으로 공동체의 발전까지 도모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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