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생존자
곽혜정 지음 / 서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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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화무쌍함과 예측불허 시대를 살다 보니 번다한 일들에 심드렁해진다. 타인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본질을 왜곡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한 직원이 빈 시간에 책을 읽고 있어 봤더니 알코올 생존자였다. 걷잡을 수 없는 감염병 시대에 걱정 없이 술을 마시고 사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아득하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 담소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알코올 섭취에 우호적인 터라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는 더더욱 눈길을 끈다.

 

   60대 배우와 30대 여기자의 연애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한때 SNS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사랑에는 나이차가 별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지만 배우와 연애하는 기자의 나이 차가 서른 살이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배우와의 결혼까지 감행할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열애에 빠졌고, 쉽게 헤어나지 못할 사랑의 포로로 갖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어떤 사안을 취재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일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기자로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잘못한 것이 없으면 아무리 거친 자가 협박을 하고 윽박질러도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는 것을 심어준 영화 싸움의 기술T를 기자는 좋아했다. 우연히 손에 넣은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사랑의 연결 고리를 찾은 기자는 T와 만난 순간부터 그의 마성에 빠져들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도 독립한 터라 서울에서의 고단한 시간도 웬만큼 견디는 깜냥을 지녔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녀는 밀물처럼 밀려드는 사랑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알코올을 즐겨 마셔온 기자는 다양한 종류의 술과 함께 청춘을 보내왔다. 힘든 여정을 마치고 난 뒤 한두 잔 마시는 술이 피로를 덜어주고 기분까지 좋게 하는 힘이 있지만 술이 술을 불러 의식까지 혼미하게 만들 때가 있음을 음주 경험자들은 알아차린다. 술에 의존하는 생활이 길어져 스스로 알코올 중독을 치료해줄 병원까지 찾은 이력은 알코올 중독의 폐해는 극명해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삶을 지배하는 내내 기자는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다.

 

   열정적인 사랑이라 믿었던 T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시험관 아기까지 생각하며 결혼 반대 여론을 종식하려고 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난공불락이었다. T의 자식들의 극력한 결혼 반대와 또 다른 여인과의 만남은 기자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파국을 예견하고 있었다. 1년 남짓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타오른 사랑은 이내 푸시시 소리를 내며 매캐한 연기를 내고 있을 뿐이다. 이후 그녀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알코올에 의존하였다. 그녀는 파탄 난 사랑의 부작용으로 중증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갇혀 헤어나기 힘든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 정신병동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은 저자의 용기는 크다. 금단 현상을 수용하고 감내하며 또 다른 삶을 설계하기 위해 나서는 행로에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이 책 속 내용은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드러낸 한 사람의 특별한 경험에 대한 진솔한 삶의 기록으로 공감 받고 싶은 이의 바람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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