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알아가는 공부가 그 무엇보다 소중함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직접 경험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여러 이유로 행동하기 어려울 때에는 한계를 뛰어넘는 방편으로 책을 읽으며 지낸다. 자신만의 생각을 가꾸고 다듬는 과정에 독서의 선한 영향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지대함을 알면서도 책 한 권을 붙들고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매체 발달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책 읽기의 진가를 뒤늦게 발견한 후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은 욕구는 커진다. 책을 읽고 표현하는 데 쌓인 힘은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갈 용기를 준다. 출근하기 위해 나서는 길 가방에는 읽을 책 한 권을 넣는다.
열매를 거둬 노년을 준비하는 인생의 가을, 높아지는 하늘은 명징함으로 마음을 맑게 틔운다. 32년째 청소년들과 함께 만나 소통하며 지내 온 시간은 다채로운 빛깔로 인생을 물들이며 너와 나를 성장케 한 소중한 시간이다. 도서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책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는 추억 속 의미를 짙게 드리우고 사제 간의 정을 이어준다. 여순 사건을 계기로 흑백으로 나뉘어 쫓고 쫓기는 상황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단된 국가의 아픔은 순수한 사랑과 대비돼 통절함을 더했다. 1년 남짓 청소년용으로 출간된 ‘태백산맥’을 읽고 문학기행을 꿈꾸며 다양한 독후활동을 벌인 뒤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한 여정이라 추억의 명장면으로 떠오른다.
분단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조정래 작가의 작품 <<태백산맥>>의 산실인 문학관으로의 기행은 일제 말기∼해방∼여순사건∼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 둔 대하소설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문학관에 이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집을 둘러보면서 소설 속 인물들을 불러내 보았다. 사상적 삶을 실현하기 위해 소화를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정하섭은 박꽃처럼 수수한 소화의 아름다움과 그녀의 맑은 기품에 끌려 외줄타기 사랑을 이어갔다. 이념을 위해 사랑을 거세한 채 스스로를 옥죄며 시련의 길을 택한 이상주의자 정하섭을 가슴에 품고 사는 박꽃 같은 새끼 무당 소화(素花)의 헌신적인 사랑은 숭고함이 더한다. 정하섭의 이념을 따르며 그를 향한 사랑의 표식으로 아이를 옥에서 낳으면서까지 그와의 정신적 합일을 지향했다.
2017년 중학교로 내려와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애를 먹었다. 45분 수업 시간 오롯이 앉아 있기는커녕 교실을 돌아다니며 어수선함을 조장하기 일쑤라 수업 진행 자체가 힘들었다. 공책을 마련하여 짧은 시를 옮겨 적고 공감 가는 구절을 찾아 이유와 함께 발표하며 문학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다. 친구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횟수가 늘면서 교사의 발표에도 조금씩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기보다는 조금 더디 가더라도 이들의 행동 변화를 기다리며 작품으로 아이들과 만나 마음을 토닥이기로 했다.
소설을 발표하는 시간,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며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도 각기 달라 어떤 길을 걸을지 알 수 없다는 말은 염상진과 염상구를 두고 이르는 말일 테다. 염상진은 신분적 차별 없이 인간답게 살아갈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빨치산 투쟁을 선도하는 지도자로 조직원들의 힘을 규합하는 일에 앞장섰다. 반면 형의 영민함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염상구는 형을 향한 시기와 분노를 표출하였다. 염상진 대장의 뜻을 따르며 갖은 고초를 달게 받는 혁명가 하대치는 빨치산들이 자멸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다리에 총상을 입은 안창민을 끝까지 보호하려는 두터운 인간애를 드러낸다.
2017년 12월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9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우리의 미래’라는 주제로 이뤄진 북 토크에 참석해 작가와 함께한 시간은 문학 작품을 읽고 표현한 활동에 감칠맛을 더했다. 숱한 등장인물들 속에서 이념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나 집에서 자식들을 건사하는 이들이나 모두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작가의 말은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십 대들과의 생활에 의미를 찾게 한다. 그 나름대로 의미를 안고 성장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고…….
선이 굵은 대하소설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여 가는 여정에 분단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작품 <<태백산맥>>은 일제 말기∼해방∼여순사건∼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 민족의 화해를 시도하는 작품입니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많은 이들은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졌고, 또 다른 이들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죽어간 이들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길 위에 서야 함을 일깨워주고 핏빛 선연한 골짜기를 넘어 피안의 세상으로 갔습니다. 사선을 넘나드는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목숨을 보전한 이들은 한낱 주검으로 화한 영령들의 주검을 목도하며 밝은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 존재의 당위성을 역사적 진보에 담으며 미명의 어둠을 걷어내는 일에 가세하였습니다. 질곡의 시대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사상적 갈등으로 첨예한 대립을 보인 민족적 충돌은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어 잔혹한 죽음으로 관계를 와해시켜 민족적 아픔을 심화했습니다.
광복의 기쁨에 젖을 새도 없이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으로 칼날을 세우고 대척하다 보니 균형 있는 사회의 조화를 이루기에는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분단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대장정에 나서서 분단국가로 동강 난 민족의 허리를 잇는 일이 소중함을 일깨운 작품 이념적 대립으로 서로를 향한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 사랑의 손길을 내밀며 살아남은 하대치를 통해 인동초 같은 생명력을 발견합니다. 단신이지만 타고난 뼈대가 굵었고, 어려서부터 농사 등의 잡일을 하느라 단련된 하대치는 강단지게 염상진 대장의 뜻을 따르며 갖은 고초를 달게 받는 혁명가로 거듭납니다. 신봉하던 이들의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하대치는 흔들림 없이 새로운 역사를 잇는 주체로 오롯이 자리하는 그의 생존과 존재의 이유를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