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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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로 시작한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들은 저마다 행복을 갈구하며 지낸다. <<완전한 행복>> 속 유나 역시 자신이 정해둔 기준에 맞춰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 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 가는 것.’

행복한 순간이 더해지는 셈이 행복이라는 은호에게 아내 유나는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했다. 지금껏 유나는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모든 일이 자신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너 때문에 짜증이 난다.’

    는 말을 딸에게 서슴지 않는 유나는 반달 늪이 있는 시골집에 들러 잔혹한 일을 벌일 때가 있다. 민서기· 믹서· 칼 등으로 돼지고기로 오리 먹이를 능숙하게 만드는 엄마와 지낼 때면 지유는 엄마가 정해놓은 많은 규칙을 따라야 했다. 착한 딸은 엄마에게 부정적인 답을 하지 않아야 한다며 유나는 딸 지유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길들여왔다. 딸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는 엄마였다.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날에는 유치원생 딸을 보육원으로 내모는 일도 서슴지 않는 가학성을 띠었다. 영악한데다 눈치가 빠른 지유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엄마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침묵하여야 했다. 유나는 가족들의 음식 기호와는 달리 온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즐기는 음식 굴라시를 만들어 식탁에 올릴 정도로 자기 본위로 살아왔다.

 

    부모 사정으로 언니 대신 시골 조부모 집에 따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동생 유나는 그 상황을 전부 언니 탓으로 돌렸다. 할머니 네에서 지낸 시간, 유나는 조부모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고통을 겪으며 지낸 시간을 언니 재인 탓으로 돌리고는 성인이 되어서도 언니를 도둑년이라 부르며 괴롭혔다.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져 지낸 재인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몫이라 여겼을 뿐이다. 재인은 대학 시절 스스럼없이 잘 지낸 준영과 동생 유나가 결혼하는 맥락 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매간의 거리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서로 엮이지 않고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이 나은 길이라 여기며 지내왔을 터이지만 엮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자매 사이에 운명의 고리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워지곤 한다.

 

    엄마의 이혼 후 주중에는 외가에서 생활하는 지유는 주말에는 새아빠 네로 가서 지낸다. 은호 역시 어머니 집에서 지내는 아들 노아를 데려와 함께 보내지만 결이 다른 시간을 보낸 가정의 재결합은 화목한 가정으로 재탄생하지 못하였다. 실패가 인생의 패턴이 될까 두려운 은호는 먼저 백기를 들고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불안정한 가정을 유지해왔을 뿐이다물불을 가리지 않는 양극단의 성격을 보이는 유나는 짐을 챙겨 지유와 함께 집을 나간 뒤 존재한다는 말로만 들었던 처형 재인을 만난 은호는 감당하기 힘든 요소가 도처에 매복해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내와의 결혼으로 뭘 감당해야 하는지 미리 알았다면, 그래도 결혼했을지 확신하기 힘든 은호는 이혼 후 바이칼 호수에서 만났던 유나를 떠올린다. 바이칼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호수로 다양한 생태 동식물의 보고이다. 은호는 한없이 넓은 호수, 끝 간 데 없는 시원을 찾아 이혼의 상흔을 녹여 풀어 넣고 싶은 마음이 동한 자리에서 높은 음으로 깔깔 웃는 유나의 치명적인 매력에 현혹되었다. 첫 결혼 실패 후 은호는 지는 것이 망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유나와의 쉽지 않은 재혼을 이어갔다. 은호는 감정 표출에 완벽하게 응하는 유나와의 결혼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아내와의 결혼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유나와의 결혼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노아의 돌연한 죽음으로 아들을 잃은 충격과 살인 혐의에서 동시에 벗어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은호는 유나와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삶의 매 순간 몰입하여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풀어가려는 여자 유나는 자해를 하거나 가해를 하며 타인의 삶까지 깡그리 짓밟는 인권 유린을 자행하였다. 한 번 제 것은 영원한 제 것으로 자리하길 바란 유나는 제 것이 남에게 넘어가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 안에 거울을 품고 사는 유나는 자신을 여왕이라 말해주는 마법의 거울을 지니고 있었음을 은호는 뒤늦게 알아차린다. 유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 남자들은 졸음운전으로 죽음을 맞았고, 이혼 후 딸의 얼굴을 보겠다는 전남편 준영은 반달 늪이 있는 곳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신재는 서준영의 실종과 유나의 행방이 관련 있을 것이라 여기며 그녀의 뒤를 밟다 죽음의 고비에 이르러서야 동생의 가학성이 지나친 자기애에서 발로된 행동임을 알아차린다. 은호 역시 아내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직장까지 잃은 극한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기 환멸에 이르렀다.

 

   ‘마리아, 마리아

   사랑하는 마리아................

   그대를 잊으려고 꽃을 꺾었네.

   눈물을 흘리면서 꽃을 꺾었네.’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노래는 음울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애절한 그리움을 돋운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을 살다 보면 운명의 힘 같은 것이 작용하여 원치 않는 길로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들 때가 있다.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듯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외부적 힘에 끌려 나락으로 전락하여 회생불능의 상황에 이를 때가 있다타인에 대한 공감 없이 자신의 생각만을 밀고 나가는 한 인물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 생각이 옳지 않다고 수정을 요구하거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을 때는 반사회적인 행동도 삼가지 않는 그녀의 극악무도한 가스라이팅은 어린 딸에게까지 이뤄졌다. 자신에게 도취되어 생각의 오류를 정정할 생각조차 갖지 못한 채 타인의 인격까지 짓밟아서라도 완전한 행복을 이루려는 유나의 뜻은 꺾였고 이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내재된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여 완전한 행복을 이루려 했던 그녀는 관계 파탄을 야기하여 불완전한 행복에 이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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