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 개정증보판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2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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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라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경주는 언제 그곳을 찾더라도 설렘을 더한다. 신라 천 년의 향이 배어 있는 고도 경주로 향하는 관문은 기와를 얹어 고풍스런 멋을 자아낸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유적지로 향하는 길을 걸을 때 처음 스치는 얼굴 수막새는 신라인들의 미소를 담고 여행자를 반기는 듯하다. 손으로 빚은 얼굴 무늬 수막새는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배어 있는 신라인들의 표정을 담은 와당처럼 보인다. 신혼여행, 수학여행 인솔, 친구들과의 우정 여행, 월지 야경을 보러가는 번개 모임 등으로 익숙한 경주를 혼자 여행한 적은 없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안양에서 경주로 향하는 첫차를 타고 경주 시내 풍경을 보며 유적지로 향하는 저자의 걸음을 따라 움직인다.

 

   뚜벅뚜벅 걸어 경주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봉황대를 만난다. 강해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평야에 거대한 무덤에 함께 묻혔다. 봉황대는 신라 시대 고분 중 하나로 단일 무덤으로는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봉황대 잔디 위로 자라는 11그루의 나무는 신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그 자리에 함께하는 목신들처럼 고분의 운치를 더한다. 고분 안에 있는 황금 유물을 보관, 전시 중인 국립경주박물관은 3~4개월 주기로 전시되는 특별전이 열려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뿐 아니라 기획전시에는 다른 나라의 유물을 전시할 때도 있다니 전시 내용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배층의 권력을 드러내는 황금 장식은 5세기 황금 문화의 정수를 드러낸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기획한 금관총, 황남대총 내부로 직접 들어간 듯 전시하는 방식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황남대총의 남성은 금동 관을 썼던 데 반해 여성은 금관을 쓰고 있어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바깥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시대 최전성기를 통치했던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주조한 종으로 당대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글들을 종의 몸에 새길 정도로 신라의 기록문화는 대단했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남긴 불교 이론서는 불교 문화권에 세계적인 영향을 남겼고, 원효가 말년에 머무른 고선사에서 옮겨온 고선사지 삼층 석탑이 국립경주박물관 구석에 위치한다니 참배하고 싶다.

 

   왕의 무덤 앞에 군신들 무덤이 함께하는 배총 문화를 알 수 있는 서악리 고분군은 태종무열왕릉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진골 출신 왕으로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춘추는 금관가야 왕손인 김유신과 손을 잡고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물에 젖으면 글자가 변하는 마법을 지닌 김유신 묘, 그의 위패를 모신 서악 서원은 홀로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한다. 김인문의 묘로 알려진 각간묘의 주인을 둘러싼 학계의 공방이 있지만 고분 속 주인만이 알고 있으리라 여기며 역사적 사료의 엄중한 기록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오랜 전투 끝에 통일 신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제 30대 문무왕은 해결하지 못한 왜구의 침략을 죽기 전까지 걱정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외세를 막겠다며 바다 속(대왕암)에 잠들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세상의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 만파식적을 얻은 곳이라는 설화가 깃든 곳이다. 대본리 언덕에 자리한 정자 이견대, 해룡이 된 문무왕 모습을 보였다는 곳에서 수중릉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기록에 의하면 감은사지 금당 뜰아래에 동쪽으로 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용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후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 불렀다.

 

   신라 최대 규모의 목탑-13금당-이 있던 황룡사와 신라 최초의 석탑이 만들어진 분황사 건립에 힘쓴 선덕여왕은 불교의 힘으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신라 호국신앙의 중심지로 거듭나려 했다. 선덕여왕은 압도적인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 중수로 위용을 드러내며 신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던 선덕여왕은 낭산에 묻혔고, 이후 그 아래에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사천왕사가 세워졌다니 불법으로 민심을 한 데 모으려 했던 그녀의 바람이 한 궤를 같이 한다. 신라 삼보 중 하나인 장육존불의 머리를 복원한 상이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안치되어 있다. 전륜성왕인 아소카왕의 전설이 깃든 장육존불은 사료를 통해 5미터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신라를 상징하는 최대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몽고의 침입으로 불탄 황룡사는 불타고 넓디넓은 터만 휑하니 남아 있어 융성했던 불교문화의 진수를 접할 수 없어 아쉬움은 크다.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유적지에 조명으로 예쁜 빛을 쏘아 밤 볼거리를 만들어 다양한 계층들을 경주를 찾게 하는 경주 야경이다. 야간에 주요 유적지를 도는 관광버스를 운행하며 신라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경주를 도드라지게 한다. 해 질 무렵이면 주변에 설치된 LED등에서 빛이 나와 첨성대를 비춘다.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천문대 기능을 한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 속 숲인 계림을 지나 반월성을 거쳐 식빙고를 보고 경주 야경의 압권인 동궁·월지로 향한다. 신라 동궁 안에 있던 인공 연못인 월지는 조선시대 이래 오랫동안 안압지로 불렸던 곳이다. 문무왕 14(674)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때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국사는 여느 절과 달리 돌로 기단을 단단히 잡은 뒤 차곡차곡 쌓아 연결한 돌담 위에 목조 건물이 세워졌다. 불국사 창건주 김대성은 다양한 신분의 장인들과 함께 대웅전 앞에 석가탑과 다보탑까지 세워 불국토를 이뤄 나라 전체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무영탑으로 불리는 석가탑은 석공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져 석가탑의 의미를 더한다. 고전적인 석탑 건립 방식을 바탕으로 조성된 석가탑과 달리 다보탑은 돌 하나하나를 목조 조각처럼 껴 맞춰 제작됐다. 부드러운 곡선미가 전해지는 다보탑은 과거 회귀의 장식을 통해 신라 불교 세계관을 확대해 불교의 전파를 가늠할 수 있게 한 창건주의 서원은 커 보인다. 본존불 앞으로 유리벽을 만들어 안으로는 일반인 출입을 금하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는 옛날 석굴암을 구경하던 것처럼 인공 굴 안으로 입장이 가능하다니 이른 새벽 경주를 찾을 이유가 생긴 셈이다.

 

   곳곳에 유적과 유물로 가득한 경주는 한꺼번에 다 보려는 욕심을 거두고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가능한 도시이다. 서사를 품고 자리하는 유적지 이름 모를 잡풀들까지도 유구한 역사를 안고 생명력 있게 자라고 있는 경주로 마음은 향한다. 노천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을 도반들과 함께 답사하며 곳곳에 세워진 석탑과 불상을 보며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보살들의 서원을 가늠할 수 있었다. 경주남산연구소에서 파견된 문화해설사와 함께 남산 유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산등성을 오르내리느라 힘은 들었지만 불국토를 이루려는 신라인들의 바람이 담긴 석불을 참배하였다. 흐르는 땀을 훔치고 너럭바위에 앉아 한숨 돌리던 한때를 떠올리며 다시 찾고 싶은 경주다. 저자가 추천한 대로 경주시티투어의 동해안 투어 코스를 이용해 보련다. ‘승차-경주전통명주시관-감은사지-문무대왕릉-양남주상절리-골굴사-괘릉-하차코스는 뚜벅이 여행자들이 기억하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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