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유서 움직씨 퀴어 문학선 2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지털 세상이 보편화되기 전 편지는 마음을 전하는 요긴한 수단이었다. 그리움이 봇물처럼 터진 날 편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는 지금도 낡은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대답 없는 상대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마음을 터놓지만 한 번 돌아선 마음은 쉽사리 돌려지지 않는다. 인류의 구원에 관심이 많은 예술인 조에는 운명처럼 다가온 솜을 사랑하며 함께한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솜은 조에와의 생활을 청산하고 또 다른 삶의 출구를 찾아 멀리 떠나버린 상태로 끊어진 인연의 고리를 다시 이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귐이 깊어지면 애정이 싹트고 사랑이 있으면 고통의 그림자가 따르나니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많은 고통의 그림자를 깊이 관찰하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숫타니파타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몽마르트르 유서>>이다.

 

   19929월에 솜을 만난 조에는 서로에게 운명처럼 빠져들어 서로를 탐닉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많은 사랑의 유형이 존재하는 파리의 몽환적 분위기 역시 이들의 사랑을 돋우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듯하다. 솜의 어머니 말처럼 조에에게 홀려 함께 지낸 시간은 둘을 성장·발전케 하는 관계로 이어지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달았다. 둘은 서로를 갉아먹으며 지내느라 힘든 생활을 되짚어 보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는 치유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솜은 대만으로 가서 자기 치유 시간을 갖기로 하였고, 조에는 몽마르트르에 계속 머물렀다. 조에는 예술적 본성을 지키며 영혼의 구원을 위한 예술 세계를 펼치기에 그만인 몽마르트르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치유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의 관계 복원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깨알 같은 글씨에 담아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솜과 함께 지낸 시간을 복원하고 싶은 바람을 담아 솜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애원하였다. 절대적인 사랑은 오직 솜뿐이었다며 지난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녀로부터 희망적인 대답은 듣지 못한 채 체념의 골은 깊어진다. 조에는 자기 구원을 위한 물음을 던지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운동과 평화로운 일상, 예술적인 감성과 열정 등 여럿 중에서도 그녀는 진정한 사랑만이 인생을 구원하는 것이라 믿어 왔다. 무엇보다 그녀는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 안에 내재된 빛과 인간의 선함을 발견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믿음 역시 솜의 사랑을 얻었을 때에서야 가능하였음을 일깨우며 엄습하여 오는 죽음의 위기를 감지하였다.

 

    조에는 솜을 처음 본 이후 꿈속에서 매일 그녀를 만났고 압도하는 운명처럼 둘은 파리에서 분홍 눈 토끼 토토와 함께 지냈다. 반려 동물 토토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아 솜은 조에를 떠났고 오래지 않아 토토 역시 숨을 거뒀다. 생명체의 온기가 사라진 주검이지만 혈육처럼 지낸 토토를 곧바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둘이 사랑하며 함께 지낸 시간 사랑의 촉매로 자리한 토토였으므로 단순한 죽음으로 처리할 수 없었을 조에의 마음이 전전해진다. 조에는 토토의 죽음을 애도하며 솜을 향한 지나친 사랑의 오점을 떠올리고 진정한 사랑을 천착하는 쓰기로 곁을 떠난 솜을 용서하기로 한다. 솜의 배신으로 모든 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힘들어진 조에이지만 편지를 쓰며 사랑을 객관화하며 스스로를 구원코자 하였다.

 

    솜으로부터 무엇도 얻을 수 없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솜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조에의 고백은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끊임없이 대가를 치르며 세월에 씻기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을 갈망하는 조에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파리에 남은 조에는 타이베이로 떠난 연인 솜을 향한 애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썼고 할 수만 있다면 파리에서의 사랑을 복원하고 싶은 갈망으로 들끓었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솜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자신에게 헌신적인 영의 사랑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에는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일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을 찾은 조에에게 영은 어떻게든 사위어가는 조에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네게 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조에의 한마디는 솜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을 부여잡고 사느니 차라리 세속의 인연을 끊고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다. 솜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조에는 솜의 마음이 되어 지난시간을 되짚어 아쉬움을 남긴 부분들을 짚지만 명쾌한 만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한 몽마르트르에서 글을 쓰며 열정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다하던 조에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한 뒤 호숫가의 정령으로 사라졌다. 스물여섯 살 조에는 승려의 삶을 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솜을 향한 마음을 죽음으로 정리하였다. 통념을 넘어서는 여러 유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소수의 성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조에의 죽음은 사랑의 본질을 생각게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7-03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성지 2021-07-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비내리는 날 웃으며 토요일 나만의 일과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