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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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관찰한다. 부족함이 많았던 시절, 열 평 남짓한 방에서 세 식구가 함께 지내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속상한 일을 다독여주던 추억은 힘들고 지칠 때 온기를 불어넣는다. 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던 집은 의식주를 해결할 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를 형성하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생각의 방이었다. 흙 마당의 후끈한 열기를 피해 마루에 드러누워 구름이 흘러가는 광경을 쳐다보면 어느새 도시로 나가 청춘 문화를 즐겨 보리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십 리를 걸어 면사무소 옆에 있는 학교를 오가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후 겪은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얼떨떨하다. 대량 생산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도로 위를 내달리는 자동차, 상가를 끼고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 등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네모난 학교 건물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이뤄진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생활하며 학생들의 사고도 사각 틀에 갇혀 지내는 일상으로 굳어졌다. 상부의 명령과 감시에 익숙한 군대와 교도소를 연상케 하는 학교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은 미래학교로 이행하는 학교 공간 혁신 구축으로 이어진다. 이는 과거의 정형화된 시설을 탈피한 교육환경 개선으로 학교와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융합 공간을 지향한다.

 

   공간에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건축은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과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학교 부지 면적은 그대로라 학교의 고층화는 가속화돼 쉬는 시간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가 뛰어노는 일이 쉽지 않다.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학생들이 자연을 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절실하다. 빈 교실을 활용한 테라스 만들기, 카페형 휴식 공간 마련 등으로 학생들이 유연한 태도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수요자의 의견을 수렴한 공간 혁신으로 학생들이 머물고 싶은 학교로 획일적인 표준화된 건물 형태에서 벗어나 창의적 융합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공간 구성으로 이뤄져야 한다.

 

   농촌적 생활양식에서 도시적 생활양식으로 이행함으로써 도시화는 개인주의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양상을 띠며 가속화돼 왔다. 한 사람이 위치한 물리적 공간이 권력을 만들어내는 상징적 건축물은 여러 나라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대중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공간적 배치는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막대한 돈을 들이붓더라도 권력의 중심축을 점유하려는 대상을 각인시킨다. 자연을 훼손하며 무분별한 건축으로 개발 이익을 남기려는 이들의 탐욕에 도시인의 삶은 황폐해져 갔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사람이 보호받는 계단과 다양한 생활상이 살아 숨 쉬는 골목의 부활로 소통의 공간이 늘어나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길 바란다

 

   도시 고밀화는 신흥 계급을 만들고 근대화로 이어졌다. 세계 어디에서나 대량생산되듯 건축의 표준 양식처럼 세워진 아파트가 그 예이다. 따로 마련된 견본주택 분양을 통한 주택공급으로 대량생산된 건축만 즐비한 주거 문화가 형성되었다. 밀집된 도시, 집의 부가가치인 평형수와 부실 우려가 덜한 대형 브랜드의 아파트에서 살기를 바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지만,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긴 현실은 시름을 낳는다. 생활의 편리함과 사생활 보호 의식을 반영한 시대적 산물인 아파트 생활자들은 은 사각 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연 가까이에서 흙을 만지며 다른 집을 짓고 사는 일상은 또 다른 꿈으로 자리한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도심에서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영상으로 보면서 도시 재생의 의미를 떠올린다. 퇴락한 도시 빌바오에 탄생한 미술관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술관을 지으며 강 옆으로 보행용 다리를 새롭게 건설해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관광 명소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축을 할 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질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건축으로 지역 편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 우리 도시라는 생각이 깃들기를 바란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집학교학원집을 순회하는 아이들은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향기를 맡을 수도 없는 생활을 잇고 있다. 미디어 소비에 가치를 두는 청소년 세대들은 공간을 소유하지 않고 소비하는 공간으로 미디어 중심의 가치관을 실현하고 있다. 원룸에 갇혀 사는 1인 생활자들은 SNS를 이용해 사람들을 만나고 공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다양한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사람이 외부와 소통하고 이동하는 데 필요한 길을 걷다 접하는 자연의 변화를 살피는 일은 존재의 의미를 찬미하는 고마운 일로 귀결된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만날 수 있는 공원을 거닐며 지친 마음을 달래 수 있는 도시에서 삶의 결을 세심히 살피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 수 있는 공유 공간 확산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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