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아파트 북멘토 가치동화 8
박현숙 지음, 장서영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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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선택의 총합이라 부를 만큼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달라진다. 다른 행성에서 지내오던 남자와 여자가 관심을 표현하며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 때 사랑이라는 감정은 둘 사이에 파고든다. 사랑의 콩깍지는 남녀의 눈을 뒤덮어 이성적 판단까지 흐리게 만들곤 한다.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고 삶의 활기를 더하는 사랑은 남녀를 하나로 묶는 촉매로 작용한다. 사랑했던 시간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한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부부 사이의 갈등은 늘어난다. 나와 다른 상대의 방식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데서 불화는 시작되고, 잦은 불화는 파국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툭하면 유치한 일로 싸우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본 열세 살 여진은 혼자 살면 서로 싸울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참견하기 좋아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며 화를 잘 내는 아빠를 보면서 여진은 독신으로 사는 고모의 삶이 낫다고 여긴다. 보잘것없는 일로 지겹도록 싸우던 부부는 갈라섰고 여진은 고모가 사는 아파트로 가서 지내야 했다. 802호에 도착했을 때,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 내부는 우아한 모습으로 지내던 고모에 대한 환상을 부수었다. 그동안 겉모습을 보면서 이면의 실상을 가늠하였던 여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할머니 집 대신 고모 집에서 생활하기를 택한 미진은 누군가에게 참견받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몰려 사는 사람들을 위해 지은 아파트에서 함께 지낸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는 고모에게 혼자서도 잘 사는 법을 배우고 싶은 바람이 있어서이다. 누군가에게 참견받기를 싫어하는 고모와 함께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지저분해도 참고 불편해도 참아야하는 아파트 생활수칙을 불문율처럼 지켜야 했다. 승강기를 이용하는 아파트 주민들은 인사를 건네는 일도 없이 벽만 보고 서있다 내리기 일쑤였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이들에게 아파트 주민들은 타인일 뿐이다.

 

   여진은 22층에서 꼼짝하지 않는 승강기를 보면서 22층에 사는 사람이 궁금해져 22층을 지켜보다 도둑으로 몰렸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잘하라는 고모의 말은 귓가에 쟁쟁하였지만 여진의 호기심은 사위어들지 않았다. 바퀴벌레 소동 후 가까워진 호진과 함께 승강기에 갇히었다 구출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을 벌였다. 정리·정돈에 확실한 호진의 삼촌과는 대비되는 고모는 지저분한 집안에도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혼자 잘 사는 방법을 조카에게 일깨워줬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일은 사생활 침해인 만큼 관심을 두지 말라는 고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미진은 22층 할아버지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가지고 나오는 검은 봉지의 정체를 알고 싶었는데 며칠 째 보이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들르던 빵집에 가서도 할아버지 근황을 알 수 없게 되자 호진이와 함께 2201호 집안을 몰래 들어가 확인하기로 했다. 열쇠 공을 불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맞닥뜨린 할아버지는 베란다에 쓰러져 있는 채였다. 두 아이의 도움으로 할아버지는 목숨을 살렸지만 씁쓸한 광경이 떠올라 서글픔이 더했다. 찾아오는 이, 관심 갖는 이 하나 없이 살다 생을 다하는 이들의 마지막이 외로움으로 밀려들었다.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며 베란다로 가서 손을 흔든 할아버지의 구조 요청은 함께 살고 싶은 바람의 손길이었다. 참견을 싫어하고 간섭받기 싫은 마음에 혼자 살기를 바라는 이들로 세상이 가득해진다면 각박함은 더할 것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보다 지저분한 공간을 함께 치우며 고장 난 물건도 함께 고쳐 쓰며 옥신각신 살아가는 일이 또 다른 행복을 줄 수 있음을 발견한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네모진 틀 안에서 혼자 편하게 지내는 아파트 생활을 선호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때 사회는 소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의 빗장을 열고 먼저 인사를 건네며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다 보면 혼자 사는 외로움은 조금씩 사위어 갈 것이라 믿으며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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