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전집 5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 돌베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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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례없는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나며 왁자한 교실 수업이 그리워진다. 새순을 달고 서 있는 나무들은 싱그러운 자태를 드러내며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는 듯하다. 정한 시간에 화상 수업을 준비하고 빈 시간에는 책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넓힌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열매 거둔 자리에 잎은 떨어져 또 다른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는 과정이 자연적 질서로 귀결된다. 반민주적 폭압에 맞서다 스러져간 생명이 민주화의 혼령으로 남은 오월의 싱그러움은 산야를 아픔으로 물들인다.

 

  2009년 5월 23일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 치료를 위해 대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가슴이 막혀 왔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고향인 봉하 마을로 귀향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검찰의 끊이지 않는 수사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정해진 순서에 따라 준비된 행사를 치르며 재임 기간을 보냈다. 그는 청와대를 나오며 깊은 안도감은 퇴임 후의 삶에 대한 설렘으로 고향을 찾았을 것이다.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봉화산 숲을 가꾸는 생태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농민들과 함께하는 서민으로 돌아온 그가 고향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른 새벽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화면에 띄운 채 홀연히 부엉이바위를 찾은 그는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피안의 세계로 향했다. 유서에는 미안해하지도 원망하지도 말라며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남은 자에게는 미안함과 원망이 크게 자리한다. 잘 나가던 조세 전문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신한 뒤 그는 힘 가진 자들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을 도와주는 삶을 시작하였다.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사건-위키 백과 사전’-을 변호하며 약자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는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지켜져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나라 건설을 위한 공약 실천을 위해 ‘원칙과 신뢰, 투명과 공정,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을 원칙으로 삼았다. 외환 위기로 야기된 경제 위기는 가계 신용의 위기를 낳고, 사회적·지역적·경제적 불균형이 극심한 양상을 띠었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촉매로 민주개혁 세력 통합을 다지려는 정치인은 대통령으로 제왕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양심과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세상을 만들려면 정권 교체가 급선무라는 생각에 실질적인 이익을 생각할 수 없는 지역구 후보로 선거에 임하기도 하였다. 실(失)을 생각지 않은 생각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하로동선(夏爐冬扇)’

    지금은 국민에게 버림받았지만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라는 바람을 가슴속에 새기며 지낸 노무현은 국회의원 두 번, 부산시장 한 번의 낙선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자신을 부단히 성찰하고 교정해 가면서 원칙과 상식의 힘에 기대어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반칙과 분열주의, 기회주의에 맞서 싸웠다. 양심과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득권 세력을 포용하며 정권을 교체하려는 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독재 권력과의 야합으로 부정과 특혜를 통해 쌓아올린 기득권 세력인 조선일보와 맞서 언론의 사명을 현실화하려는 야심을 드러냈지만 쉽지 않았다. 보수 언론으로 진실을 왜곡하며 사실을 곡해하는 보도로 진보 세력을 음해하는 기사를 싣는 것은 예사였다.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얻은 노무현은 1988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지며 은폐한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 했던 정의파였다. 당장은 손해가 되더라도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견지하며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원칙과 진실, 정의 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지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속 멍울로 부채를 더한다. 탄핵으로 관저에서 연금을 당하던 때에는 책을 읽으며 숙고하는 시간 속에 침잠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여러 사상가들의 삶을 접하며 부족한 부분을 다스렸다. 기록으로 남긴 역사적 사실을 정리한 글에는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겨 있다. 부끄러움임 많은 청년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비전을 실현하며 못다 한 이야기에는 회한 섞인 충정의 사연이 더해져 목울대가 축축해진다. 모순의 거리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끊고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던 그가 생전에 부르던 노래를 들으며 못다 이룬 바람을 실현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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