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 2020년 전면 개정판
정목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이러스 감염의 우려가 큰 코로나 19 확산으로 집에서 주로 밥을 먹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진다. 고적한 시간을 혼자서도 잘 보내고 있지만 열흘 이상을 이러고 지내다 보니 갑갑해진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들길을 걷는 시간이 귀한 일이었음을 간과하고 지내온 시간을 돌아본다. 골목길 지나 집으로 가는 길 풀빵을 팔던 아주머니 등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가의 평온한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평화로운 시간을 바라는 마음이 커서일 것이다. 지나고 보니 밋밋하다고 여긴 무탈한 일상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때, 공포심을 더하는 코로나 19 확산이 멈추길 바라며 정목 스님의 글을 읽으며 평정심을 찾는다.

    느릿느릿 움직여도 달팽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목적지를 향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내포하는 의미처럼 조금 더디 가더라도 자기만의 걸음으로 갈 길을 걸어가는 일은 긴 인생에 필요하다. 성향이 다른 점은 생각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조바심을 내어 따라가느라 챙기며 지켜야 할 것들을 놓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빠르게 질주하는 시대에 느릿느릿 움직이며 사는 사람들이 시대착오적 유형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자기만의 속도로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일은 흔들림 없는 삶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행자의 걸음으로 익숙한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물상을 보며 현지 문화를 즐기는 자신과 대면하고 싶은 시간 내면의 고요함으로 빠져든다.

 

    현명한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아 걱정을 포함한 번뇌는 끊이질 않는다. 불안한 감정이 일어나면 그저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지금 걱정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함을 밀려왔다 빠져가는 파도를 보며 깨닫는다.

    ‘깃발도 바람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이다.’

    많은 감정의 넘나들이 역시 마음이 일으키는 속임수, 환영이라고 말하는 스님의 가르침에 숙연해진다. 호흡하는 길을 따라 흘러왔다 사라지는 감정을 살피어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라는 상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행복은 깃들 수 있음을 알고 올라오는 감정을 그 느낌 그대로 알아차려 그 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는 일은 삿된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통해 가능해진다. 관계가 편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도움 준 한 가지를 생각하며 부정적 감정을 소멸해가는 연습은 일상에서 지속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지금 이 순간, 왜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과거에 매이거나 미래에 목말라 하는지요?

    미래는 언제나 오늘입니다.

    이미 와버린 미래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란 말이지요.’ (55)

    상실의 고통에 맞닥뜨릴 때마다 미래의 목표점을 향해 안달재신하며 보내온 시간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이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건강하게 잘 지내던 이가 하루아침에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고, 전화하면 곧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외로운 투병 생활을 잇는 일들이 흔한 50대에 집중해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 오늘임을 알아차린다.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함께하고 싶은 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한마디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일부터 시작할 일이다. 말과 행동으로 짓는 과보를 새기며 말을 탄생시키는 생각을 조심하여 삿된 언행은 삼가야 한다. 저마다 중력을 갖고 있는 생각은 가까이 있는 생각들을 끌어당기는 만큼 좋은 쪽으로 이끌 수 있도록 바른 생각으로 일상을 보내면 좋을 것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날 아프게 하지 마라.’

    애절한 사랑을 담은 다모의 명대사는 너와 내가 분리된 남남이 아니라 똑같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존재임을 환기한다. 서로를 돌보고 아픔을 위로해주며 작은 것도 나누는 마음이 사랑임을 발견한다. 서로 소유하려 들지 않고, 서로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마음의 친구로 명명하는 소울 메이트는 인생의 든든한 자산으로 소중히 다뤄야할 보석 같은 존재이다.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기보다는 내 방식이 아닌 세상의 물길에 따른 흐름을 음미하며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마음을 닫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음미하는 관점의 전환이 다양한 개체가 호흡하는 사회로 자리할 것이다. 자신과 상대에 대한 일방적 판단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행운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축복하는 마음이 모아질 때 평화는 가까이 깃들 것이다.

 

   보글보글 끓어오른 찻물을 다관에 부어 데우고 그 물로 찻잔을 헹궈 숙우에 버린 뒤 찻잔에 부어 식힌 물을 다관에 붓고 차가 우려지길 기다린다. 찻잎을 따서 볶고 비비기를 반복해 말리는 힘든 과정을 잘 알기에 차 한 잔에 고마움을 새긴다. 천천히 향을 음미하고 입안에 퍼지는 녹차의 맛에 스며든 평화를 새긴다. 화가 날 때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차 한 잔을 우려 마시며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거두는 일을 시작하고, 미혹하게 하는 것들을 차단한 채 고요함에 마음을 맡겨보는 일로 갈무리해야 평화의 균열을 막을 수 있다. 마구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너그럽게 대해 부정적으로 치닫는 마음을 향해 긍정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라 타이르는 과정은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마음을 다잡는 방편일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