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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 - 치욕의 역사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박기현 지음 / 시루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류성룡의 징비록을 처음 대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1592년에 있었던 일본군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이순신 장군이 왜 수군을 무찔러서 나라를 다시 찾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이 책은 1592년 임진년으로부터 1598년 무술년까지의 기록물이다.
그러나 1592년 이전에 있었던 유의미한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임진왜란의 발발 이전의 국내 정세와 형편 등을 참고할 수 있어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데 더없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것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한 보고서이자 책임을 통감한 참회록이기도 하다.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경 중에 있을 때, 조정은 당파싸움으로 지새었고, 오랜 평화의 후유증으로 군대는 군기가 무너졌고, 전쟁 준비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군대는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일본 군대는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유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쓴 류성룡은 전쟁 중에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지내면서 전시수상의 역할을 수행함은 물론, 군사정책 전반을 총괄 운영하는 책임자의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 것은 류성룡은 단순히 한 사람의 대신이 아니라 온 백선들에게는 국왕의 대리인이었고, 명나라와 연합전선을 이끌어 낸 모든 군대의 수장으로서 없어질 위기에 있는 나라를 지탱하는 교두보였음을 알게 된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일본의 전쟁 준비 상황과 반드시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을 예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조에게 당해 사실을 보고하면서, 하루 빨리 방어체제를 진관제로 변환할 것을 간청했다. 진관제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에 군사체제로 전환하는 일종의 향토방위의 전략을 의미한다.
또, 왜적의 쳐 들어오는 길목인 경상도 지역을 담당하는 장수를 젊고 용맹한 이일로 교체해야 함을 간하였고, 각 지역의 성곽수리를 비롯해 무기상태를 검열하도록 건의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의 세사지 건의는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류성룡의 예상대로 전쟁에 대패했던 것이다.
선조는 이미 명나라도 귀순하려는 의지로 조정을 내 팽개쳤고, 민심은 이반되어 사실상 나라는 텅 비어 버리는 형국이었다. 이에 류성룡은 선조의 명나라로 가는 것을 적극 만류하여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도록 명나라를 끌어 들여 왜적을 물리치도록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전란 중 우리나라는 명나라와 후금과 일본 세 나라가 분할 지배할 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고, 이를 타개하고자 후금의 참전을 적극 방어하게 되기도 한다.
류성룡은 문관이지만 전쟁에도 깊은 관심과 전문적인 식견을 두루 갖춘 뛰어난 인물이었다.
1594년 선조 27년, 왜적의 재침을 막기 위한 ‘근폭집’의 열 가지 조목으로 분류, 정리한 내용은 오늘날 적용해도 좋을 군사적 교본이었다.
또한 이 책은 그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란의 원인과 배경, 그 과정과 결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정리하여 후세에 경계를 삼을 수 있도록 남긴 기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