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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 - 스물셋 청년 하용조의 친필 일기
하용조 지음 / 두란노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천국의 사람, 하용조목사님~
1976년에 연예인 교회를 개척하였고, 1980년에는 두란노 서원을 창립하셨다.
그리고, 1985년, 12가정으로 용산에 온누리교회를 개척하여 시무하시다가 2011년 8월 2일 뇌출혈로 소천하셨다.
소천하신지 약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목사님의 유덕은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46년 전에 기록된 일기문이다. 1968년 8월부터 1969년 5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쓴 영혼의 기록이며, 신앙의 피 맺힌 절규이자 고백이다.
그 때가 하목사님의 나이 스물 셋, 한창 피 끓는 대학생이었다.
성경에는 바울이 옥중에서 썼다는 책이 네 권이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옥은 자유를 감금당하고 삶을 유예 받아 오로지 하나님과 그가 개척한 교회들에게 집중한 시기였을 것이다.
바울의 감옥처럼, 하목사님에게는 병원이 이와 비슷한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하목사님이 대학생선교회에서 활동하던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약 7년 동안 훈련을 받는 동안 전도하는 기쁨을 배운 분이다.
목사님이 대학교 3학년 여름 수양회 캠프에서 폐병이 발견되어 휴학을 했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밤 12시까지 전도를 했다. 그리고 약을 먹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고통스러워할 정도로 전도에 미쳐 있었다.
그는 병원의 입원을 두고, 하나님은 아무도 못 만나게 철저히 고립시켜 두고 오로지 성경만 보게 했다고 의미를 부여 한다. 그러면서 밤낮 주님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은 [눈을 맞으시며 비바람 속에서 사랑과 구속의 선물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입원은 곧 주님이 그 곳으로 파송하신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라고 말하며,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주님을 전하는 일에 열심 했다.
그리고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의 흔적에 참여하여 끝없이 바라보는 의지가 없다면, 나의 혀를 끊어 주시고, 눈을 멀게 하옵소서. 두 손을 절단시켜 주옵소서]라고 몸부림친다.
그는 또 모세와 같이 기도도 한다.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지옥에 갈지언정, 내 식구들, 나의 핏줄, 현제 동포와 동지들이 주의 진노를 받도록 할 수는 없다]고---
하목사님은 두 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신앙에서는 김준곤목사님, 도덕 윤리 차원의 세상 사는 이치에 대하여는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장로님이 그 두 스승이다.
그리고 그의 입원의 의미를 이렇게 깨닫고 정리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믿어 왔다. 그러나 깨달아 보니, 믿음도 전도도 기도도 모두 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