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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 연필이 사각거리는 순간
정희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평점 :
연필은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연필로 글자를 배웠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고, 철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연필은 연필심이 희미하여서 글자를 쓸 때마다 침을 발라서 꾹꾹 눌러서 쓴 기억이 난다.
그 연필은 필통이라는 데 담겨서 책 보따리에 책과 함께 쌌다.
그 책 보따리(보퉁이)를 허리에 차거나 어깨 참에 묶고 다녔는데, 달릴 때마다 필통에 담긴 연필이 요란하게 달그락 거렸던 그 소리가 먼 바닷가의 파도소리처럼 들려온다.
저자는 감성이 풍부한 분이 틀림없다. 요즈음은 연필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샤프팬슬이라는 연필심으로 끼어 쓰던 도구도 이제는 구경하기 힘든 때에 살고 있다.
이로 보면, 연필은 가난하고 순순한 시절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시대적 상징물이다.
연필은 칼로 연필을 깎아서 사용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집에서 부모님들로부터 여분의 연필을 준비해 다녔다. 그러다가 그 연필을 부러뜨리기라도 하는 날은 영 낭패를 당했던 것도 생각난다.
그 때는 또 얼마나 기록할 게 많았는지 모른다. 판서라고 해서 선생님은 커다란 칠판 한 판을 가득 글자로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면, 칠판을 지우고 새로 한 판을 썼던 때였다.
이 책에 나오는 [연필 실종 사건]은 특별한 경우이겠지만, 그 당시는 어디에서나 일어 날 수 있는 예사로운 일이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 공감을 준다.
‘미역 갖다 줄게 때리지 마세요, 김 갖다 줄게 때리지 마세요’ 가장 극적인 공감을 준다.
연필은 항상 지우개가 필요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연필과 지우개가 따로 따로 있었는데, 나중에는 연필 끝에 지우개가 붙은 연필이 개발되었다.
글씨를 쓰다가 틀렸거나 잘 못 써 졌을 때는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며, 다시 기회를 가지는 여유가 있었음을 함유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여 요즈음의 볼펜은 이런 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곧 문명의 발달은 한 편으로는 인정이 메마르고 배려심도 없고 한 번 틀리면 기회도 주지 않는 삭막한 세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저자가 필리핀 여행 중 오른 손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앞으로 연필을 쥘 수 없으면 어쩌지?]였다는 걱정에 연필에 실려 있는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걸을 수 있다니, 연필을 쥐고 쓸 수 있다니’ 저자에게 연필은 단순한 필기도구가 아님였음을 알 수 있다. 속도와 합리에 길들어 있는 지금, 이 책은 우리에게 더 중요한 삶의 가치와 의미, 덕목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