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달리다]로 시작한 건축가의 책.

건축가는 움직일 수 없는 지상의 구조물이나 건축물을 짓는 사람이어야 함으로 움직임의 대명사격인 ‘달리다’의 말이 잘 매칭이 되지 않는 언바란스나 파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저자가 이 표현을 쓰는 것은 필시 무슨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예단하며 글을 읽는다. 저자가 강한 상징과 암시의 기호로 의도적으로 차용했으리라는 생각으로 내용으로 들어 간다.

첫 챕터의 소제목이 또한 ‘세계를 달린다’로 되어 있다.

이쯤에서는 서문에서 보던 ‘달리다’의 의미가 더 선명해졌다. 저자가 세계적인 건축가이니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건축을 하는구나하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건축의 변화의 트랜드를 ‘이제 건축가는 상대(건축을 의뢰하는 크라이언트)를 내려다보며 일을 고르는 엘리트가 아니라 매번 레이스에 나서야 하는 경주마’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변하게 된 계기를 1997년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지방 도시에 프랭크 게리라는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이 지어진 것에서 비롯했다고 기술한다.

이런 건축계의 변화의 흐름에는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의 경제세계화라는 상황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설계의뢰를 수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건축공모전 즉 ‘설계경기’에 적극 참여해야 수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건축가에게는 시간도 예산도 여유로운 상태에서 느긋하게 임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형실은 경주마처럼 쉬지 않고 뛰어 다녀야 살 수 있다는 현실진단이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자신도 사무실도 무너지기 때문에 계속 세계를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다녔던 나라들과 관계자들의 에피소드와 정서, 건설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독한 술을 마시는 통과의례를 통해 테스트를 받아야 하고, 상대의 이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완곡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프랑스, 이태리, 영국을 똑 같은 유럽으로 통칭하지만 세 나라는 공모방식이 전혀 다르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미국의 건축계는 그 배후에는 유대인이 실세들이라는 발견도 싣고 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유랑의 경험을 한 민족들이라 국경을 넘어선 교역에 관심이 있는데, 이는 현재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어느 날, 오른 손을 다치는 큰 사고를 당하였고, 두 번이나 대수술을 받았는데, 일부러 물리치료를 게을리 하여 약간 불편한 상태로 살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온 몸으로 느끼고 자신을 전체로 대지에 놓아 봄으로써 더 깊게 건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체험담이다.

저자는 대 재해 시스템으로서 ‘문명’의 중추를 담당한 것은 ‘건축’이라고 단언한다.

생명의 위기를 느꼈을 때, 안온하고 강한 보금자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앞으로는,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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