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 가난을 고발하려 인도로 떠난 사진가, 마더의 사랑에 물들다
오키 모리히로 지음, 정호승 엮음, 정창현 옮김 / 해냄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가난한 사람은 아름답다, 가난한 사람이 굶어 죽는다면 그건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러분이나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 사랑이 참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랑은 상처를 받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라는 지론으로 일관했던 마더 테레사의 사진과 전기가 한 줄기 새벽빛처럼 청량하고 신선하다.
그리고, ‘기쁨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대가 가는 곳마다 항상 기쁨이 넘쳐흐르도록 애쓰라’는 신조를 몸소 실천하며, 인도와 세계의 가난의 한 복판에서 인류를 대신해서 사랑을 베푸시던 작은 거인, 마더 테레사.
그녀는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 스코예프의 카톨릭 신자인 장사꾼의 딸,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녀는 카톨릭 집안의 영향으로 자연적으로 선교사들을 통하여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소명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열여덟 살 때 아일랜드에 있는 로레토 수도회의 수녀가 되었다.
벵골의 선교지구 파견신청을 낸 뒤 1929년 인도로 향했고, 1937년 최종 서원을 마친 후 성마리아 고등학교의 지리 교사가 된다. 그 학교는 대부분 잘 사는 집의 자녀들이었으므로 무언가 부족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다르질링을 방문하면서 굶주림에 괴로워하고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돕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켈커타 대주교와 로마 교황의 허락을 받고 켈커타 슬럼가로 들어 가게 되었고, 후에 ‘사랑의 선교 수녀회’로 정식 인가를 받게 된다.
이 때 부터, ‘마더 테레사’로 명명된다.
그 수녀회 탄생 2년 뒤에 힌두교 칼리 사원에 ‘임종자의 집’을 세우고, 그 후 3년 후에 ‘고아의 집’을 세우게 된다. 또, 1968년 3월, 서 뱅골의 주지사가 준 90만평의 드넓은 땅 티타가르에 뭄바이에서 열린 ‘성체대회’에 참석한 교황 바오로 6세가 선물한 링컨 컨티넨탈로 약 1억 1,500만원을 기금으로하여 한센인 환자들을 위한 생활공동체인 ‘평화의 마을’을 조성하게 된다.
그녀의 계혹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대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뒤 주고 간 땅에 ‘프렘단(사랑의 선물)’으로 명명한, 정신병동이나 학교, 뇌성마비나 소아마비 어린이를 위한 시설들을 지었다.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의 기부를 받아 여성 전용 정신병동인 ‘케네디 센터’도 완성하였고, 켈커타 시내에서 매을 약 일천 가구분의 급식활동도 실시했다.
그녀는 평생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봉사하는 일을 실천하였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에는 인도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사망할 무렵에는 한센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무료 급식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국 610개의 선교 단체가 되었다.
그녀는 유언으로 ‘내가 묻힐 곳은 마더 하우스’라고 말했다 한다.
그녀의 대리석 묘비에는 ‘1910년 8월 26일 ~ 1997년 9월 5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말씀 한 구절이 새겨 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도 하늘의 또 다른 별이 되어 이 땅을 밝게 비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