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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침묵 - 불가능한 고백, 불면의 글쓰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1월
평점 :
시란 원래 생략과 여백의 예술이라고 배워 왔다.
꼭 있어야 야 할 말만으로 글을 고르고 골라서 시를 지으라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시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말들 중에 귀한 말들을 고르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투하며, 심지어는 불면의 밤까지 낮을 삼고 그 말들을 찾고 또 찾는 작업을 하는 것이리라.
이 책 제목, [릴케의 침묵]을 보며,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라이너 마리어 릴케를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릴케는 1910년 [말테의 수기]를 발표하고, [두이노의 비가]를 쓰기까지 10년간 침묵과 고뇌의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침묵은 무한한 인내와 기다림으로 충만한 침묵이었고 규정한다.
저자는 말한다. [고요한 침묵 속에 침잠해 있을 때가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순간이다(93페이지)]고 정의한다.
또한 릴케가 10년 동안 침묵해야만 했던 것은 글쓰기와 언어의 원칙인 침묵에 대한 진지한 헌신 때문이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보다 침묵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하며, 모든 존재들의 참된 목소리는 침묵이며, 이는 문화의 기원이며, 글쓰기의 최초의 문장이라고 한다.
저자는 침묵이 스스로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침묵하라고 말하며, 지나친 형용사의 사용은 혐오스러운 감상주의로 갈 수 있음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가 필요한데, 종이 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한 그루의 나무와 그 나무를 의지하고 사는 미생물이나 벌레나 짐승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하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또, 독자들은 그 책을 읽으며 한 번씩 죽고, 다 읽은 후에는 새롭게 태어난다고 말한다.
또,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신이 행한 천지창조의 반복이며 창세기의 재구성이라고 정의한다.
이와 같이 한 권의 책은 천지를 창조하는 일에 동참하는 과업이며,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지금껏 책을 읽으며, 이런 의식과 중요성을 알고 읽은 적이 없다.
그저 단순하게 지식과 간접 경험을 얻는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책을 대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이토록 치열하게 쓴 작가들에게도, 많은 고귀하고 값진 것들의 대가로 얻은 책에게도 엄청난 실례와 무례의 잘 못을 저질렀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불면의 글쓰기-시간과 이야기, 두 번째는 잃어버린 사랑의 미학, 세 번째는 삶, 내가 존재하는 순간들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으로 추천한다.
그런 특별한 계획이 없더라도, 그저 한 권의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