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2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문장과 장면들'출판사에서 출판하고, 가랑비메이커가 쓴 단상집입니다.

저자는 이 책, [삶과 작품]이라는 글에서 갈래와 관계없이 모든 유무형의 작품은 그 삶을 담거나 닮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참 옳은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을 오래 쓰고 잘 쓰는 전문 글쟁이(?)들은 가상의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 쓰겠지만, 그러나 그 들 속에도 그 사람의 향기와 체취가 베어 나올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글감을 구하고 취하는 일에 쉬지 않는 열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이란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그 바탕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주의의 사물들에서 얻은 것들을 자신의 체에 걸러 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작가가 단상집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즉 짧고 가벼운 생각들을 모아 놓았다는 것이겠지요. 시처럼 길지 않는 짤막짤막한 글들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글 속에 담겨져 있는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작가는 우린 닮아간다고 믿었는데 나는 너무 닳아져 버렸고 새겨 둔다는 게 깊은 상처를 냈고 지워낸다는 게 넓은 자국을 남겼어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에서 나는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나름 잘 하려고 정성을 기울이고 공을 들였던 일들이 자주 헛디딘 발처럼 의지와는 다르게 꼬이고 틀어져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사소한 것 같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오랜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면서 작가의 매일 책을 쓰고 영화를 읽는다는 말을 수긍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특별한 기억력과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도저히 간파해 내지 못한 감상들을 글로 적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통찰력과 민감한 신경망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매 순간, 매사를 이렇게 느끼고 사는 분들은 아마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미세한 감각을 하나쯤 더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런 특별함을 작가는 이 글 속에서, ‘나는 그 보편이라는 것에 낙오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편의 예외자. 참 기가 막힌 탁견이고 표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시각과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한 미묘한 틈새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이런 글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작가는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도, ‘많은 책을 읽는 이보다, 한 문장을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이 좋다고 하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보다는 몇 개의 힌트만을 던져 놓고서 침묵하는 이에게서 더 많은 것을 읽는다고 말함을 보면서, 역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가득 채운 깡통이 소리가 없고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많은 학식이 겸손을 가르쳐 주었다고 믿게 됩니다. 바쁘고 무더운 일기 속에서 이런 청량감을 주는 글들을 읽으면서 더위를 잊는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가을에 읽으면 딱 좋을 내용입니다. 좋은 에세이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픈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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