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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평점 :
용서를 화두로 하는 철학 서적이기에 이 책은 이해하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유대인 말살 사건을 다룬 아렌트, 얀켈레비치, 레비나스, 데리다 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 책의 저자인 개인적인 경험-자신을 버리고 새 아버지를 찾아 가는 어머니-을 통해 용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용서에 대한 두 가지의 스펙트럼을 큰 기둥삼고, 동기부여로 삼았습니다. 그 하나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인용한 용서를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또 하나의 스펙트럼은 매주 수요일마다 28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거행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주축이 된 ‘일본의 사죄 배상’을 요구하는 용서를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두 가지의 테마는 동일하게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이고,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푸는 좋은 방법이 없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책은 [용서는 이해한다는 뜻일까, 용서는 사랑한다는 뜻일까, 용서는 망각한다는 뜻일까]의 세 가지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설명하면서, 프로이트, 프리드리히 니체,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를 잃고 살해 당하기 전에 구출된 프랑스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심리분석가인 보리스 시륄리크와 같은 학자의 이론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시작 지점에서, ‘시동이 걸리고 정원 문이 열린다.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엄마의 시선이 잠깐 백미러로 향하는가 싶더니 곧 차가 출발한다. 엄마가 떠났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007p)’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들고 농장 단지의 큰 길을 걸으며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두 딸의 호위를 받으며 엄마는 농장 문으로 들어섰다(231p)’로 이 책은 끝맺고 있습니다.
그냥 서사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가 수 십 년 후에 다시 상봉했다는 해피엔딩의 상황을 추론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 은 아님을 이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가 이 책 뒤표지에 써 놓은 ‘용서--- 참으로 거창한 말이다’ 에 강한 동감을 표하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