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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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년 전 자살한 정미의 언니 유미가 정미의 친구인 현비를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언뜻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이 떠올려지지만 이 소설이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데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면, 『알갱이들』은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 



현비는 정미와 친한 건 맞지만 '절친'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이러한 그의 말이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현비가 전학가서 만나게 된 소윤을 대하는 태도에서 짐작되어지는 부분이 있다. 사실 소설 초반에 현비의 말이나 태도를 보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친구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더 나아가 내가 꼽는 친구의 범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 이후에 자기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슬프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태연해 우려스러운 현비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은 분명한 상실과 고통이다. 몸은 껍데기일뿐이라면서 그저 얼굴만 아는 남자와 육체 관계를 맺고, 자해를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 앞서 썼듯 현비는 정미가 절친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사람은 정미뿐이다. 





  
 
현비는 썩지 않는 쓰레기(플라스틱류)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어떤 측면에서는 집착이라고까지 보인다). 읽는 내내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는데 소설 후반부에 알맹이, 알갱이, 껍데기에 대한 현비와 고모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하나하나의 알갱이가 되어 알맹이가 된다. 우리가 구분을 했을 뿐 껍데기 역시 알맹이의 일원이라는 것. 


현비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본다거나 마음을 담아 애도하고 보내주는 장면 그리고 유미와의 화해는, 죽으면 모두 잊어야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이자 살아있는 자들이 망자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어야함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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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쫄지 마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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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세 개의 꼭지점에서 개별적 사건으로 출발하지만, 하나의 이벤트를 향해 가고 있다. 1차적으로 닉네임을 사용하는 범인과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밝히고 시작하는데, 읽으면서 궁금해지는 부분은 범인 '트리그'가 누구냐는 것, 그리고 그가 왜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미 죽은 자의 복수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냐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종단에는 체포될 것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골자가 정의실현을 명분으로 하는 무차별적 대리 살인인 것 같지만, 사실상 가정폭력을 다루고 있다고 읽힌다. 범죄 가해자 둘의 공통점은 가정폭력, 특히 가스라이팅 피해자라는 점이다. 한 명은 아버지로부터, 다른 한 명은 어머니와 광신도로 이루어진 교회로부터.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할 부모의 그릇된 양육으로 인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 자녀. 소설은 사적이고 내밀한 관계에 있는 가족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두 범죄자가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그 이면에 깔린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과정은 그들이 감내해야했던 유년시절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가해자 서사에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라고는하나, 그들의 과거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범죄자뿐만이 아니다. 중년에 이른 사립탐정 홀리 역시 과거 어머니의 말을 현재까지도 잊지 못하고 상처를 되새긴다. 문득,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은연 중에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의도로, 자녀가 아직은 미숙하다는 이유로, 삶의 여러 부분에서 선택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싶고. 이걸 가스라이팅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어른들 스스로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ㅡ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제 잇속으로 타인의 고통과 양심을 저버리는 자들.  
 
소설이 절정으로 치닫는 후반부. 두 명의 살인마가 활개를 치고 있는데, 정작 경찰은 자선 야구 경기에 더 열을 올린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대리 살인으로 애도하겠다는 정신 나간 사람, 경찰보다 더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위험을 감지하는 사립탐정과 그의 동료들, 잿밥에 더 정신을 팔고 있는 경찰. 이 웃지 못할 설정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작가가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이입해서 읽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비단 어느 한 나라에 국한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터다. 시의성 짙은 소설이다.  
 
스티븐 킹 작품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는데, 본문만 600쪽 분량을 일요일 하루에 읽었다. 역시 가독성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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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어디에 있나요?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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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잃고 이름이 '찰스'에서 '언un찰스'가 된 시종 로봇 하나가 새 주인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는 대인 봉사에 특화된 정교한 서비스 모델로서 인간을 섬기게끔 설계된 로봇이다. 주인으로 섬길 자의 조건은 오직 하나, 인간이기만하면 된다. 그런데 이 인간 한 명을 발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언찰스가 처음으로 보게 된 장원 밖 세상은 폐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거의 없고, 사방은 파괴의 흔적과 오염물질과 쓰레기산으로 둘러싸야 있다. 지구의 모든 지역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쇠퇴했고, 사회적 붕괴를 맞이했다. 인류는 이제 선도 악도 남아 있지 않다. 인간은 사라지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했던 로봇들만 남았다. 세상은 종말을 맞았는데 로봇들은 그들대로 취업난으로 경쟁 중이다. 마치 인간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 역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도태되어 사장된다. 그리고 인류가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그 잘못된 길을, 로봇들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타자를 적대시하고, 승리를 위해 경쟁자를 짓밟고, 폭력에 광분하며, 아무런 명분 없이 전쟁 그 자체가 목적인 전쟁을 자행하는 파괴적인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로봇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자신이 로봇임을 반복적으로 각성하는 기계 언찰스. 감정에 충실하고 직감이 뛰어나며 존재의 의미에 집착하는 인간 여성 더 윙크. 전혀 다른 특성과 기질을 가진 두 개체의 동행. 만약 로봇에게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할 의지와 자율권이 있고, 생각을 통해 판단을 하고, 감정을 느끼며 타자를 향한 연민의 손을 내밀 줄 안다면, 그는 로봇일까, 사람일까. 점점 더 정교하고 인간에 가까운 AI를 만들겠다는 인간의 열망은 혁명일까, 파국일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인간이 설계한 AI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단죄하는 세상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갈수록 진화해가는 AI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가. 


소설은 인류 종말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장원이나 수도원과 비슷하게 그려지는 도서관, 성직자처럼 느껴지는 사서 로봇 등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한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사를 빗대어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의식과 자율, 지식과 기록, 권리와 의무, 사유와 고독, 이타와 연대, 이기와 탐욕, 폭력과 파괴, 기억과 망각, 신神과 종교, 신을 자처하며 군과 사법부를 장악해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정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 종단에는 이르러야할 공존 등 소설은 로봇을 통해 인간을 반추하고 있다. SF소설이지만 철학소설로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의미있게 읽힌 지점은 언찰스와 더 윙크의 '연결'이다. 그 둘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끊임없이 소통을 하는데, 그들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좀처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다. 그럼에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더 윙크는 진실을, 언찰스는 자신을 받아줄 인간 주인을 찾기 위해 하염없이 헤매지만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데, 그와중에도 서로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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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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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 유대인 소년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노란 별'을 달고 다니는 열네 살 소년 죄르지 쾨베시가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반강제적으로 기차에 실려 아우슈비츠, 차이츠, 부헨발트 수용소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1년의 여정을 담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본문의 분량이 3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기억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러나 소년 죄르지는 독자에게 고통을 애써 호소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다름은 본질적인 내면에 있는가, 아니면 겉에 달고 다니는 '노란 별'에 있는가. 그리고 왜 다름으로 인해 험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무의식 중에 자기점검을 불러오는 반복되는 미움과 소외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열네 살 소년을 따라다닌다.  


ㅡ 


수용소의 구조나 일련의 규칙, 반복되는 일상과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수용소의 분위기, 강제노동과 구타와 배고픔으로 피폐해진 몸과 정신, 구차하고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곳의 사람과 소회 들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다. 이 소설에 이입하게 되는 이유는 가혹한 수용소의 참상에 대한 고발이 아닌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한 인생과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에 대한 고찰, 주인공이 갖는 강한 생명력과 희망이다. 그래서 읽었던 페이지를 되돌아가 두 번 읽게 되더라.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렸던 부분이 있는데, 죄르지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직후의 장면이다(죄르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삼일 간 머물렀다). 독일군 장교의 군복이 멋있어 보이고, 새벽 사이렌 소리에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 독일군에 대한 호감과 존경심이 생기며, 무엇보다 큰 목욕탕이 있는 것에 기뻐한다. 곧장 건강 검진을 하는 이유가 징병이나 업무 적합도 검사라고 생각하고,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자들을 호기심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너무 천진해서 슬프다.  


기차에서 내리는 소년에게 황급히 나이를 올려말하라는 유대인 죄수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공부를 하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자기의 나이를 솔직하게 말했다면, 죄르지는 곧장 가스실로 보내졌을 것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스쳐지나가는 이의 작은 호의와 한순간의 선택만으로도 삶의 길이 바뀔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가 반대편의 선택을 했다면, 어쩌면 이 소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테고.  


홀로코스트 문학을 이미 많이 읽은 독자라도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타의 책들과 다른 지점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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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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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는 물류센터 AI 관제 시스템의 이름이다. 물류센터의 모든 것을 아르고스가 통제한다.  


강남에서 저속노화 클리닉을 운영하던 정재일은 빚을 져 도망치고 김해의 한 물류센터까지 쫓기듯 밀려난다. 로봇 팔이 처리하지 못하는 비규정 박스를 처리하는 D구역 노동자들은 눈밑이 시커매지면서도 하품 한 번 하지 않고 꼬박 밤을 세운다. 정재일에게는 석 달 안에 갚아야할 빚 3억이 있다. '피로를 모르는 혈청'. 어쩌면 그들의 혈액 속에는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재일은 일회용 주사기를 손에 쥐고 호시탐탐 사냥감을 노린다. 





 
 
한쪽에서는 고분군 문화재를 지켜야한고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주민들이 보존 구역 확대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도로 건너에는 혁신적인 스마트 물류 센터 완공을 목표로 테크노벨리 확장 공사 현장이 있다. 또다른 한쪽에는 현재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는 비닐하우스촌이 있다. 시위대와 공사 현장 사이에는 버티고 서 있는 경찰 기동대 버스, 윙윙거리며 하늘을 쉴새없이 날아디는 드론, 사정없이 땅을 파헤치고 있는 굴삭기. 1500년 동안 잠들어 있는 고분군 안의 가야인과 몇 날 며칠 동안 잠들지 못해 시간이 흐를수록 좀비에 가까워져가는 노동자들이 공존한다. 이 얼마나 기괴한 모습인가.  



돈만 벌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 있는 좀비가 될 의향이 있는 사회적 약자들. 타인이 죽든 살든 돈벌이만 될 수 있다면 인간성이나 윤리 쯤이야 가뿐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탐욕.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할 것은 아르고스가 아니라 여전히 돈만능주의적인 세태와 상실해버린 인류애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인간을 지키지 않는 세상에서 기계가 인간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소설에서 수아의 '꿈'과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아의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문득 문학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대체로 허구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적어도 나는) 문학에서 얼마나 많은 위로와 힘을 얻는가. '꿈'이나 따듯한 온기가 담기 '말(소리)'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겠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ㅡ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산하다. 개인적으로 어설픈 공포영화보다 더 긴장하면서 읽었다. 특히 문장의 간결함과 사이사이 단문들이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이 작품은 인간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노동 현장에 대한 고발이자 점점 더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낭만소설이기도 하다.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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