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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평점 :
판단 착오였다. 처음 이 소설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부족의 규범에 얽매인 두 청춘 남녀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라고 여겼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들을 틀렸다고 손가락질 했던 부족의 기성 세대에게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세계의 각 지역에 있는 원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나의 예상을 철저히 깨뜨렸다.
소설은 다구, 그리고 주툰바 두 사람의 인생 여정을 각각 따라간다. 두 인물은 소설의 초반부와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 만날 뿐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주툰바가 무리를 떠난 궁극적인 이유는 규칙이나 전통 없이도 무엇이든 성취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명은커녕 제 발등 제가 찍은 격으로 수십 년을 수치와 모욕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그제서야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는다. 주어진 혜택을 당연 시 여겼고 부모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자신이 강하고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가족들로부터 보호 받으며 살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원수의 가장 잔인한 모습의 닮은꼴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다구는 원하던 대로 '해의 땅'을 향해 여행을 떠나고, 목표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긴 여행으로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기보다는 귀중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함께 일해야 한다는 그위친족의 삶의 방식을 제쳐두었고, 늦게 나마 꿈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서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했으나 결국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고, 그제서야 무리가 영위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한다.
두 사람은 무리는 달랐으나 그위친족의 유별난 반항아들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남는 것만이 추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사실과 연대를 거부했다. '해의 땅'에서는 혼자서도 살 수 있지만 '눈의 땅'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때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지만 매 순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 살아남았다.
우리는 살다 보면 원하지 않더라도 사회 혹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혹은 채무감 때문에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고, 일단 선택하면 가능한 나의 일부로 만들어간다. 그에 대한 결과가 비록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자책하지만, 그 선택을 한 우리 자신에게 잘못은 없다.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얌전히 혼인을 하지 않고 도망을 쳐 더 나쁜 운명에 휘말린 것이 새소녀의 잘못일까? 아무도 얹어주지 않은 채무감을 스스로 안은 채 자신의 꿈을 포기한 다구는 어리석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 운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견뎌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충분히 삶을 훌륭히 살아냈다.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앞서 힘든 시기를 지나온 이전 세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아마 우리 다음 세대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2021년 현재처럼 인간은 뜻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 던져 지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헤쳐 나와 미래로 향하는 것 뿐이다. 다구와 새소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