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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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후 찾아온 가을과 겨울에 나는 너를 위해 이 작은 글의 정원을 정성스레 가꾸었다. 정원에는 노래와 이야기로 만든 두 개의 문이 있다. 노래는 나의 것이나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일 뿐. / 서문에서 
 


 
시작부터 지슬렌이라는 여성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를 자신의 노래로 만드는 연인의 마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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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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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착오였다. 처음 이 소설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부족의 규범에 얽매인 두 청춘 남녀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라고 여겼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들을 틀렸다고 손가락질 했던 부족의 기성 세대에게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세계의 각 지역에 있는 원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나의 예상을 철저히 깨뜨렸다.  





 




 
소설은 다구, 그리고 주툰바 두 사람의 인생 여정을 각각 따라간다. 두 인물은 소설의 초반부와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 만날 뿐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주툰바가 무리를 떠난 궁극적인 이유는 규칙이나 전통 없이도 무엇이든 성취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명은커녕 제 발등 제가 찍은 격으로 수십 년을 수치와 모욕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그제서야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는다. 주어진 혜택을 당연 시 여겼고 부모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자신이 강하고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가족들로부터 보호 받으며 살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원수의 가장 잔인한 모습의 닮은꼴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다구는 원하던 대로 '해의 땅'을 향해 여행을 떠나고, 목표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긴 여행으로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기보다는 귀중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함께 일해야 한다는 그위친족의 삶의 방식을 제쳐두었고, 늦게 나마 꿈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서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했으나 결국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고, 그제서야 무리가 영위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한다.  




 
두 사람은 무리는 달랐으나 그위친족의 유별난 반항아들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남는 것만이 추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사실과 연대를 거부했다. '해의 땅'에서는 혼자서도 살 수 있지만 '눈의 땅'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때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지만 매 순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 살아남았다.
 
우리는 살다 보면 원하지 않더라도 사회 혹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혹은 채무감 때문에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고, 일단 선택하면 가능한 나의 일부로 만들어간다. 그에 대한 결과가 비록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자책하지만, 그 선택을 한 우리 자신에게 잘못은 없다.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얌전히 혼인을 하지 않고 도망을 쳐 더 나쁜 운명에 휘말린 것이 새소녀의 잘못일까? 아무도 얹어주지 않은 채무감을 스스로 안은 채 자신의 꿈을 포기한 다구는 어리석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 운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견뎌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충분히 삶을 훌륭히 살아냈다.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앞서 힘든 시기를 지나온 이전 세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아마 우리 다음 세대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2021년 현재처럼 인간은 뜻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 던져 지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헤쳐 나와 미래로 향하는 것 뿐이다. 다구와 새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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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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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걷는' 남자와 '사냥'을 하는 여자가 숲에서 우연히 만났다. 두 젊은이는 서로가 낯설었다. 같은 그위친족이지만 무리가 달라 처음 보기도 했으나 그것보다는 목적 없이 걷는 남자와 사냥하는 여자는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있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두 젊은이는 곧 헤어졌으나 이 우연한 만남을 기억할 터였다. 
 
 
차라리 그림자처럼 살았던 시절이 좋았을 터다. 책임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연기하거나 포기하게 만든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 갖게 되는 채무감과 의무감은 얼마나 큰 무게로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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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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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그위친족 무리 중에 있는 소녀 주툰바. 딸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는 어머니 나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툰바는 아버지와 세 오빠들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아버지 조흐는 아들 뿐만 아니라 딸에게도 무기를 쓰도록 훈련시켰다. 통상적으로 여자아이들에게는 요리와 양육, 바느질, 식용 식물과 약초를 채취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툰바는 사냥꾼들이 높게 평가하는 기교인 새소리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법을 터득했다. 가족들은 주툰바를 '새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세월이 흘러 주툰바는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다. 노련한 사냥꾼이 되었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으며, 물살이 몹시 빠른 강에서도 헤엄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야영지의 청년들과 경주를 하고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딸을 자랑스러워했으나 무리 사람들은 그녀를 탐탁해 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부족 내 관습에서 여자 아이의 남성성을 격려하며 교육시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각 무리에서 비호감으로 전락한 다구와 주툰바의 앞날이 평탄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은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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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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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단정해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아주 면밀한 감정을 묘사하는데 독보적인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의 대가들도 많고 감정 묘사에 우월한 작가들도 많지만, 단편 소설로써 이토록 탁월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다. 만나는 작품마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늘 작지만 긴 파동을 남기는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 열 두 편이 실렸다.  







 

인생은 항상 논리적일 수 없고, 이해 가능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예측 불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회 규범이나 도덕적인 잣대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작은 교감에도 사랑은 싹틀 수 있고, 이별의 원인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다.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욕정일 수 있고, 살아온 긴 세월이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사랑의 잔재는 남는다. 사랑이 변하고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느끼는 슬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운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니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에게 짐이 된다 여겨 자괴감과 죄책감에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돈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우리를 시험대 위에 올려 놓는다. 비밀을 지켜도, 비밀을 고백해도 어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사람들. 인생의 절정에서 내려와 아무도 보아주지 않은 노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들. 이렇듯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윌리엄 트레버는 이 모든 것들을 비관적이지 않게 보듬으며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하듯이 독자를 위무한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고인 곁에 앉다] [큰돈] [밀회] 였다.
[고인 곁에 앉다]는 오랜 결혼 생활 끝에 남은 부부의 애증을 더할나위 없이 느낄 수 있었고, [큰돈]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결심한 젊은이의 모습을 미국적 시각이 아닌 미국에 가지 못한 아일랜드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소설이라는 점에서 짧지만 흥미로웠다. [밀회]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은 내 전부야. 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별을 택한다. 부서지지 않은 사랑을 간직한 채로 늘 이 순간을 준비한 여자. 사랑이 끝나도 살아간다. 사랑에 있어 용기를 내는 자는 늘, 여자다. 



모든 작품이 아름다웠다. 왠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을 읽으면 나도 그럭저럭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의 이야기는 희망이 아닌 곳에서 시작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에만 윌리엄 트레버 책 3권을 읽었다. 어김없이 좋았다.





♤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쓴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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