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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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단정해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아주 면밀한 감정을 묘사하는데 독보적인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의 대가들도 많고 감정 묘사에 우월한 작가들도 많지만, 단편 소설로써 이토록 탁월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다. 만나는 작품마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늘 작지만 긴 파동을 남기는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 열 두 편이 실렸다.  







 

인생은 항상 논리적일 수 없고, 이해 가능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예측 불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회 규범이나 도덕적인 잣대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작은 교감에도 사랑은 싹틀 수 있고, 이별의 원인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다.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욕정일 수 있고, 살아온 긴 세월이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사랑의 잔재는 남는다. 사랑이 변하고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느끼는 슬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운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니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에게 짐이 된다 여겨 자괴감과 죄책감에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돈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우리를 시험대 위에 올려 놓는다. 비밀을 지켜도, 비밀을 고백해도 어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사람들. 인생의 절정에서 내려와 아무도 보아주지 않은 노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들. 이렇듯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윌리엄 트레버는 이 모든 것들을 비관적이지 않게 보듬으며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하듯이 독자를 위무한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고인 곁에 앉다] [큰돈] [밀회] 였다.
[고인 곁에 앉다]는 오랜 결혼 생활 끝에 남은 부부의 애증을 더할나위 없이 느낄 수 있었고, [큰돈]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결심한 젊은이의 모습을 미국적 시각이 아닌 미국에 가지 못한 아일랜드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소설이라는 점에서 짧지만 흥미로웠다. [밀회]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은 내 전부야. 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별을 택한다. 부서지지 않은 사랑을 간직한 채로 늘 이 순간을 준비한 여자. 사랑이 끝나도 살아간다. 사랑에 있어 용기를 내는 자는 늘, 여자다. 



모든 작품이 아름다웠다. 왠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을 읽으면 나도 그럭저럭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의 이야기는 희망이 아닌 곳에서 시작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에만 윌리엄 트레버 책 3권을 읽었다. 어김없이 좋았다.





♤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쓴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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