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간호 보조로 일하고 있는 마슬로바를 찾아간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표정과 태도에서 어딘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마슬로바는 네흘류도프가 건넨 빠노보의 사진을 보면서 행복했던 추억에 잠겼다가 그의 배신에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덩달아 고달프고 피폐했던 매춘부 생활까지 떠올리면서 네흘류도프를 향한 분노가 치솟았고, 그동안 삶의 회한에 흐느낀다. 오래 전 약속을 어겼던 그를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 다시 농락당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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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는 네 가지 용무때문에 뻬쩨르부르그로 향한다. 고등 법원에 마슬로바의 상소장을 제출하고, 청원 위원회에 페도시야 비류꼬바의 사건을 소청하며, 해당 기관에 슈스또바의 석방을 요청하는 동시에 요새 감옥에 갇힌 아들을 어머니가 면회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구속되어 가족들과 헤어져 까쁘까스로 추방되게 생긴 어느 종파 교도들에 대한 문제가  그의 용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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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는 약자들을 위해 나섰지만 사사건건 모순된 현실에 고통스럽다. 생각이 많아지면 사는 게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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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보헤미안의 삶으로 대표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의 '파리파' 중 한 사람인 모딜리아니. 
 
내가 아는 화가 중 안타깝기로 손에 꼽는 화가다. 삶의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그의 마지막, 아니 그의 아내 잔을 떠올릴 때마다 늘 울컥하게 된다. 


빈 동공이 삶에 대한 무언의 궁정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는데, 정작 그의 삶은 긍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잔을 만나 인생의 행복감을 느낀 것은 7년, 잔은 고작 스물두 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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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에서 이기지 못하면 마슬로바를 따라 시베리아까지 따라 가기로 한 네흘류도프는 돈이 필요한 처지가 되자 토지 문제를 이전처럼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 손해를 보더라도 그 문제를 개선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직접 토지를 경작하는 형태로 송금을 받는 대신 헐값으로 농민들에게 임대하여 지주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한다. 자신의 영지를 둘러보기 위해 꾸즈민스꼬예 마을에 도착해 장부를 검토한 네흘류도프는 농민들이 심각하게 착취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 사실을 예전에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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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마슬로바와 처음 만났던 빠노보 마을에 도착한 네흘류도프는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마주한다. 가난에 찌든 그들의 처참한 삶은 네흘류도프가 상상도 못할 만큼 참혹했다. 돈만 제 때 들어오면 영지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관심없는 지주와 농민들을 지주보다 더 잔인하게 약탈하는 관리인은 흡사 강도와 다르지 않다. 네흘류도프는 두 마을을 둘러보면서 농민이 가난하게 사는 근본적인 원인은 토지를 빼앗기는 데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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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의 말에 간계가 있을 거라고 여기는 농민들은 귀족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혹사를 당하고 속아왔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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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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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의 주인공 거트루드는 그림 안에서 언뜻 보기에 남성같다. 그 초상화를 본 거트루드의 지인들은 초상화가 모델을 닮지 않았다고 말하자 피카소는 '앞으로 닮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자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이 갔다.  
 
돈과 재능이 있었던 유대계 미국인 거트루드는 성소수자로서 가부장적인 남성 가장처럼 행동했고, 동반자를 순종적인 여성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또한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면서 나치에 적극 동참해 반유대주의에 앞장섰다. 여성과 유대인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차별적 시스템에 동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스템의 최상층에 자리하기를 원했다. 피카소가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도무지 얼굴을 알 수가 없었다는 말을 던진 것, 그리고 초상화를 모델없이 그렸다는 사실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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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입체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장. 입체주의에서 활성화는 것은 '보는 사람'이다. 즉 피사체가 아닌 보는 (그리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납득되는 말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자신이 바라본 시각의 움직임을 그린 것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을 복수화하는 것이 입체주의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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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앙리 마티스



"내가 꿈꾸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고 기분을 저하시키는 주제가 아닌 균형과 순수와 청아함의 예술, 사업가든 작가든 모든 정신노동자들을 위한 진정작용, 심적 위안물, 육체적인 피로를 풀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예술이다." 

('예술가의 노트' / 앙리 마티스) 




야수파의 제왕, 앙리 마티스. 

춤과 음악을 색채 형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게 표현했다. 기쁨, 관능, 음악, 춤 등을 자유와 조화, 가능성 등을 단순함과 경쾌함으로 담아낸 그의 작품은 현대인의 피로와 고단함을 위로한다. 

 
​마티스의 <예술가의 노트>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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