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줄 질문일기 365 Q&A DIARY
김종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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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냐고?
물론 쓴다. 


플래너와 일기, 독후록을 포함해 1년에 보통 세 권의 다이어리를 사용한다. 플래너와 독후일기야 쓸 내용이 분명하지만, 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에세이보다 마치 업무보고서같은 꼴이 되고 만다. 간단하게 하루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수준에 그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다보니 굳이 이걸 왜 쓰고 있나싶기도 하고. 


그래서 내년에는 간소하게 다이어리를 한 권만 사용하기로 했는데, 막상 구매한 다이어리가 도착하니 너무 작아서 별 수 없이 일기장은 별도로 만들어볼까하던 차에 질문일기를 만났다.  



요거 요거 물건일세.
365일, 각각 다른 하나의 질문에 답변하는 다이어리인데, 생각거리를 던져주니까 쓸 맛이 난다. 날짜가 지정된 다이어리가 아니라서 아무때나 시작해도 무방하고, 매일 써야한다는 부담감도 없으니 금상첨화. 무엇보다 글은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사람한테도 맞춤이다.  


마침 며칠 전에 모임이 있어서 들고 나가 보여줬더니 다들 좋아한다. 여기에 쓰인 질문으로 한참을 수다삼매경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선택은?'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요즘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일은?'
'지금 내 앞에 커피 두 잔이 있다면 누구와 마시고 싶은가?' 



사소하고 가벼운 질문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긴 질문까지 상당히 다양한데, 사소한 질문조차도 쓰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성찰의 시간이 생긴다면 더할나위 없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2023년 1월 1일부터 작성하고 싶어서 손가락이 간질간질하지만 꾹 참고 있는 중이다. 포스트잇에 써서 몇 장 붙여놓았는데, 내년에 같은 질문지에 나는 무어라고 쓸지도 궁금해진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해볼 참이다.
(쓰고 이야기도 나눠보려고. 부담 팍팍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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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 사회적 아픔 너머 희망의 다크 투어리즘
김명식 지음 / 뜨인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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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자가 마지막엔 사람까지 불태울 것이다.'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어' 중에서)



이 책은 우리의 역사에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채 파편으로 방치된 괴로운 사건들의 흔적과 유물과 공간을 탐방하는 책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한편으로는 역사를 목도하는 이들이 불편해할 수 있지만, 저자의 글처럼 개인을 시작으로 민족 혹은 공동체에게 각성과 교훈을 주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어휘는 '일상의 추념'이다. 책에서 언급한 '일상의 추념'은 매헌시민의 숲에 자리한 추모 기념비이다. 저자는 공간이 주는 '일상의 추념' 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상의 언어를 통해 재난 혹은 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기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일상의 추념'이 기념비를 넘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홍준 교수님의 말씀이 번뜩 생각났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공동묘지 페르 라세즈와 유관순 열사의 묘지에 대한 얘기였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한 '존재의 상실 혹은 부재에 관한 공간, 기념비나 기념관 혹은 묘지나 무덤은 남은 자가 수행해야 하는 자명한 행위, 곧 건축이고, 건축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p108)'는 글과 일맥상통한다. 추모가 특정 행위가 아닌 일상에서 공유되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한다는 점, 그리고 접촉성이야말로 기억과 공감의 전염성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미처 몰랐던 사실과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한 곳 중 하나는 오월걸상이다. 오월걸상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희생 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데에 지역의 한계와 기존의 추모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오월걸상을 본적이 없는데, 내가 접근하기에 쉬운 곳은 경기도 모란공원, 명동 성당이 되겠다.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의 동상과 서울역 머릿돌에 새겨진 사이토 마코토의 휘호에 대한 부분은 그야말로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 머릿돌이 아직도 붙어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은행 머릿돌, 연세대학교 내 수경원 터, 마포구 '선통물' 표시석 등이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인 휘호라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역사가 우리 일상의 한부분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은 일상의 공간이 될 만한 기억의 장소들, 도심 속 기억 공간들, 역사와 일상이 맞물려 기억되고 있는 공간들을 찾아가고 소개한다. 역사 답사를 다니면서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곳들도 나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주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어제와 내일 사이 오늘 새길 시간의 무늬는 기억의 미학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무늬를 새기는 것도, 그 무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하는 것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소명임을 다시 생각한다.  




106.
기억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면 다양한 방향에서 흘러온 지류는 한 방향의 강한 본류에 묻혀 커다랗고 힘센 일방적인 정체성에 묻히거나 밀려나고 말 것입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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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7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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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릴과 살라딘, 마훈드와 아부 심벨, 이맘과 아예샤 등 각각의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되면서 동시에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교차해가며 서술하고 있다. 


지브릴 파리슈타는 인도의 각종 신들을 연기하는 입냄새가 심한 무신론자 스타 배우이고, 살라딘 참차는 인도인이라는 자신의 근본을 멸시하고 거부하며 완벽한 영국인이 되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노력하는 목소리 배우다.  










루슈디 소설의 시작은 남다르다. 두 남자의 추락 장면을 도대체 몇 페이지나 할애를 하는지. 그런데 도입부의 추락하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 읽을 때는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뒤로갈수록 왜 이 장면을 이토록 길게 서술했는지 알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두 인물이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무신론자이면서 신을 연기하는 배우 지브릴의 노래와 영국인이 되고자하는 살라딘의 노래의 내용은 아주 다르다. 작가는 첫장면부터 은연 중에 이 두 사람의 운명을 암시하며 시작한다. 


거기다 살라딘의 직업이 목소리 배우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대중의 욕구에 맞춰 목소리 연기를 하지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는 영국 내에서 인도인의 위치를 말하고 있음이 아닐까 싶다. 무신론자이자 다신교의 신들을 연기하는 지브릴이 대천사가 된다는 설정도 아이러니하고.  


사람들은 지브릴의 광채 때문에 그를 천사로 여기고, 살라딘의 외모는 그를 악마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ㅡ 


1권에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지브릴과 살라딘 각각의 개인 서사와 더불어 무함마드를 연상시키는 마훈드, 그리고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모델로 삼은 이맘, 그리고 이맘에 대립하는 아예샤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2권을 읽지 않은 상태라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산발적으로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소설에는 온통 악마 투성이다. 힌드는 영국조차 악마의 섬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창게즈는 영국을 숭배하는 아들의 머릿속에 악마가 들어앉다는 등 어디에서도 천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지브릴도 지독한 구취가 사라지고 외모만 그럴듯해졌을 뿐 구원은 커녕 사고만 치고 있어 그 역시 천사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지경이다. 사티로스의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 악마라고 불리는 살라딘도 그저 무력한 어린애 모습을 하고 있다.   


빈곤자, 고아, 여성, 이민자를 학대하며 수단으로 활용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자들. 왜곡된 해석을 명분삼아 신의 이름으로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를 구분하고, 차별과 폭력으로 지배하는 사람 혹은 집단을 '악惡'으로 지칭한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종교나 민족, 국가의 경계를 두지 않는 듯한데, 이러한 부당함에 분노하지 않는 자야말로 '악惡'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재미있는 점은 살라딘 본인이 무기력하고 살라딘에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커질수록 그의 몽뚱이는 점점 커져가는 반면 증오와 분노를 모두 토해낸 살라딘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맘은 망명지에서도 혁명군이라 일컫는 반정부 세력을 주도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사항은 이맘의 고국을 통치하며 종교적.정치적 지도자인 그를 추방한 사람은 여왕 아예샤, 여성이다(그녀의 서사는 일단 보류). 이맘은 아예샤를 폭군이자 부도덕한 자로 단정하는데, 강력하게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반미를 지향했던 민족주의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모습이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ㅡ 


왜 이슬람교를 모독한 소설이 됐을까? 


이스마일(지브릴)은 어머니가 죽기 전부터 이미 초차연적 세계의 존재를 믿어왔다. 그는 밤에 비몽사몽간에 자기도 모르게 공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을 가난하고 비루한 시절에 부유한 미망인을 만나 사업에 크게 성공을 거두고 결혼까지 한 무함마드와 비교한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들려온 알라의 계시를 집대성한 것으로서 그가 신의 계시를 받은 시점에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함마드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한 것이다. 천사의 음성을 들은 무함마드는 한동안 자신이 귀신 들린 것인지 불안해 하다가 드디어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알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활동 초기에 겪었던 '악마의 시' 사건'으로 표현했다. 거기다 마훈드의 귀에 대고 속삭인 '악마의 시'는 마훈드의 갈망 때문에 천사 지브릴이 마지못해 억지로 속삭인 것이라고 썼다.  


살라딘은 비행기 납치범 중 남자 세 명을 부질없는 허상을 좇는 자아도취에 빠진 허세 가득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비난한다. 그들에게는 영예스러운 성전 아니던가. 


마호메트를 모해머드(Mohammed)라며 말장난을 한 것, 누가봐도 마훈드의 서사는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인물인데, 그를 악마의 동의어인 '마훈드'라고 이름 붙였다는 점, 그리고 이브라힘과 하가르의 이야기를 통해 은연 중에 이슬람교를 여성을 학대하는 종교로 표현했다.  


이외에도 내가 무슬림이라면 소소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여럿 있다. 물론 소설 전체를 보면 이는 소설의 장치일 뿐이고, 영국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다만 외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설에서 서술한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역설적이든 아니든, 그들의 폭력적 방식의 대응을 별개로, 이 정도면 무슬림 입장에서는 거슬리는 것을 넘어서 펄펄 뛸만하지 않을까싶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예수를 대입한다면 기독교에서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무튼, 이렇게 보면 작가가 이슬람교를 모욕한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은 2부에 있다. 아부 심벨은 장로들을 설득해 자힐리아가 좀더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도박장, 매움굴 등 향락 업소를 들였다. 관리들은 나그네들에게 뇌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몸값을 노려 순례자를 납치했다. 일부 부족의 젊은 패거리들은 시내를 돌며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세상에서 마훈드는 다른 가르침을 전한다 


이 부분에서 앞서 언급했듯 악마를 지칭하는 '마훈드'는 집단의 이기에 거슬리는 존재이자 다신 문화에서 오로지 유일신만을 믿는 자다. 작가가 이를 역설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즉 '마훈드'는 진짜 악마가 아니며 아부 심벨같은 자들이 그와 그가 믿는 신을 악마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 마훈드는 결국 세 여신의 숭배를 인정해 아부 심벨의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지만, 실질적으로 세 여신을 인정함으로써 마훈드가 무릎을 꿇은 셈인데, 이 장면 역시 예언자가 박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코란, 즉 '악마의 시'를 부인했다는 점에서 무슬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ㅡ 


다시 아무튼, 2권으로 가보자. 
다 읽어야 생각이 정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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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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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드를 화자로 둔 소설은 중년이 된 라시드의 현재 시점으로부터 레하나와 피어스의 사랑, 60여년의 시간이 흘러 아민과 자밀라의 사랑을 과거에서부터 서술한다. 2부를 거의 다 읽어갈 동안 도대체 1부와 2부가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60여년 괴리의 의아함은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1부가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소설은 식민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독립을 앞둔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식민주의의 폐해나 비판이 소설의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지으며, 무겁게 다루지 않을 뿐더러 유럽인과 원주민의 대립 또한 수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이름 없이 살다가 죽어간 이들에 대해 이야기이자, 잊혀져버린 그들에 대한 기록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기록은 그들이 한 때 살아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특히 3부에서 런던으로 유학을 간 라시드의 경험과 깨달음은 작가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교편을 잡은 이유를 대변하는 듯 읽힌다. 


1부에서 버턴에 의해 나타나는 영국의 식민주의와 종교 및 인종 비하, 그로인한 식민주의를 과학적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인도인과 아프리카인들에게 가해지는 복종과 노동을 인류애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보이며 야만적인 대륙과 토착민의 번영과 질서를 위해 유럽인 정착민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자를 상징한다. 문명화를 위해 살인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 이미 복종을 강요하는 것으로써 살인하는 것과 다름하지 않으며 원주민들은 충분히 원시적이기에 간섭하지 않고 그냥 두어도 알아서 죽을 거라는 주장. 어떤 주장이든 백인, 특히 유럽인을 제외한 사람을 인간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마찬가지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유럽인과 기독교인이 그들 자신을 제외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백인 사냥꾼들이 잔혹하게 도륙하는 아프리카 동물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있음을, 새삼 충분히 알 수 있다. 


라시드가 영국에 온지 1년 뒤인 1964년 고국 잔지바르에는 신정부 전복 사건이 발생한다. 언론 매체에는 폭력과 학살이 연일 보도되고, 아버지의 편지에는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돌 생각은 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오로지 공부에 몰두했던 라시드의 모습에서 작가가 자신을 투영했음을 독자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아민은 '우리가 복종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지배자들이 감독하지 않아도 노예 같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아민이 말하는 '지배자'는 단순히 강대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종교와 이념으로 박해당했던 사람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로부터 비롯된 그릇된 관습과 편견과 차별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레하나와 자밀라를 떠올려보면 '지배자'의 범위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고통과 두려움을 가족과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죄책감, 부모를 원망하며 그들이 어서 죽기를 바라는 죄책감. 남은 자도, 떠나 있는 자도 외롭고 괴롭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이러한 시대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의 심정으로 살아내야만했던 수많은 이들의 서사를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보여준다. 자밀라를 잊지 못한 채 외로움과 공허함이 끝나기 때문에 다가올 죽음이 행복하다는 아민의 말이 왜 이렇게 헛헛하게 울리는지. 


배반이란 무엇을,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레하나를 저버린 아자드와 피어스일까, 아니면 관습과 가족의 강요을 극복하지 못하고 복종을 선택한 아민일까, 그것도 아니면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려야했던 라시드일까. 


나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 소설에서 그리지 않은 두 형제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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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창 탐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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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하타 상속 감정소에서 근무하는 미쓰기는 의뢰를 받고 벽지 마을 사쿠마로 향한다. 의뢰인은 혼조 가문으로 유서 깊은 거상 집안인데 시류에 맞춰 사업 수완을 발휘해 목재, 골프, 호텔 등 벌리는 사업마다 호황을 누렸다. 그러한 혼조 그룹이 1980년 이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혼조 가문의 기둥 역할을 했던 혼조 구라노스케가 세상을 떠났다. 미쓰기가 외진 마을까지 찾아간 이유는 유산 대부분이 산림과 가옥이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감정하기 위해서다.  








장남의 특권을 내세우는 거만한 다케이치로, 오로지 돈만 밝히는 염세주의자 차남 고지, 공명심이 커 재산보다는 경영권 사수에 매달리는 삼남 에쓰조,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적장애아를 홀로 키워야 하는 넷째 사요코. 네 남매는 미쓰기에게 각자 나름의 사정을 들어 자산 가치를 높여 유산 상속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부탁한다. 그런데 정작 부채 비율이 높은 혼조 가의 자산은 여차하면 채무초과 상태에 놓일지도 모를 처지다. 에쓰조를 제외하면 다른 상속자들은 회사가 망하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  


미쓰기는 오른쪽 어깨에 인면창이 있다. 다섯 살 때 생긴 상처가 후유증으로 남았는데,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덩어리진 상처가 어느날부터 말을 하기 시작한 것. 인면창의 조언으로 채취한 지층 샘플을 토양분석 시설로 보내는 미쓰기. 이틀 후 돌아온 지질 분석 결과에는 표층의 퇴적층에서 몰리브덴이 검출 됐음을 알렸다. 몰리브덴은 현대 산업에 다양하게 쓰이는 중요한 자원인데 일본 내에서는 매장량이 낮아 수입에 의존하는 광물이다. 이 광물의 함유율과 광산 면적에 따라 혼조 가는 새 사업으로 부활할 수도 있다. 아직 확정되는 않은 결과에 혼조 가 남매들의 눈빛과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날 밤, 화재가 발생한 창고에서 불이 꺼진 후 장남 다케이치로 부부가 사체로 발견됐다. 인면창의 말에 의하면 범죄가 발생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동기, 방법, 기회. 이 세가지가 모두 들어맞는 사람, 누구일까?  


그리고 살인 사건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ㅡ 


일단,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고작 대여섯 권 정도 밖에는 읽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렇게 만담하듯 코믹적인 글은 처음이지싶다. 인면창 씨가 등장할 때마다 깔깔대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누가 없기를 천만다행이었다. 


각 장의 소제목을 보면 피해자를 너구리라고 지칭한다. 읽으면서 왜 하필 너구리일까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를 짐작할 만한 내용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한 힌트는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이기에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게 잔인하다. 이즈쓰 이쓰로 씨, 당신의 삶도 안타깝지만 당신이 쓴 책의 대상 독자를 생각했을 때 그런 책은 곤란합니다. 설마 진짜 이런 책은 없겠지?


선악을 판단하지 못하고 파괴충동을 억제하는 방법을 모르는 소년의 모습은 혼조 구라노스케와 같은 선상에 있다.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여전히 가부장제와 봉건제를 고집하는 벽지 마을에서 마치 왕처럼 군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은 추악하기만 하다. 낡은 인습을 통한 삐뚤어진 야망,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갖고 인간의 존엄성을 하찮게 여기는 그는 악마의 모습을 대신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권력에 몸을 조아리고 악습을 방관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살아 있다면 가해자의 입장으로 남았을 것이다. 순정도, 연민도, 동정도 마음에 품고 있을 때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함을 잊지 마시라.  


이 소설의 진짜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 미쓰기한테 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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