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창 탐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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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하타 상속 감정소에서 근무하는 미쓰기는 의뢰를 받고 벽지 마을 사쿠마로 향한다. 의뢰인은 혼조 가문으로 유서 깊은 거상 집안인데 시류에 맞춰 사업 수완을 발휘해 목재, 골프, 호텔 등 벌리는 사업마다 호황을 누렸다. 그러한 혼조 그룹이 1980년 이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혼조 가문의 기둥 역할을 했던 혼조 구라노스케가 세상을 떠났다. 미쓰기가 외진 마을까지 찾아간 이유는 유산 대부분이 산림과 가옥이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감정하기 위해서다.  








장남의 특권을 내세우는 거만한 다케이치로, 오로지 돈만 밝히는 염세주의자 차남 고지, 공명심이 커 재산보다는 경영권 사수에 매달리는 삼남 에쓰조,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적장애아를 홀로 키워야 하는 넷째 사요코. 네 남매는 미쓰기에게 각자 나름의 사정을 들어 자산 가치를 높여 유산 상속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부탁한다. 그런데 정작 부채 비율이 높은 혼조 가의 자산은 여차하면 채무초과 상태에 놓일지도 모를 처지다. 에쓰조를 제외하면 다른 상속자들은 회사가 망하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  


미쓰기는 오른쪽 어깨에 인면창이 있다. 다섯 살 때 생긴 상처가 후유증으로 남았는데,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덩어리진 상처가 어느날부터 말을 하기 시작한 것. 인면창의 조언으로 채취한 지층 샘플을 토양분석 시설로 보내는 미쓰기. 이틀 후 돌아온 지질 분석 결과에는 표층의 퇴적층에서 몰리브덴이 검출 됐음을 알렸다. 몰리브덴은 현대 산업에 다양하게 쓰이는 중요한 자원인데 일본 내에서는 매장량이 낮아 수입에 의존하는 광물이다. 이 광물의 함유율과 광산 면적에 따라 혼조 가는 새 사업으로 부활할 수도 있다. 아직 확정되는 않은 결과에 혼조 가 남매들의 눈빛과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날 밤, 화재가 발생한 창고에서 불이 꺼진 후 장남 다케이치로 부부가 사체로 발견됐다. 인면창의 말에 의하면 범죄가 발생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동기, 방법, 기회. 이 세가지가 모두 들어맞는 사람, 누구일까?  


그리고 살인 사건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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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고작 대여섯 권 정도 밖에는 읽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렇게 만담하듯 코믹적인 글은 처음이지싶다. 인면창 씨가 등장할 때마다 깔깔대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누가 없기를 천만다행이었다. 


각 장의 소제목을 보면 피해자를 너구리라고 지칭한다. 읽으면서 왜 하필 너구리일까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를 짐작할 만한 내용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한 힌트는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이기에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게 잔인하다. 이즈쓰 이쓰로 씨, 당신의 삶도 안타깝지만 당신이 쓴 책의 대상 독자를 생각했을 때 그런 책은 곤란합니다. 설마 진짜 이런 책은 없겠지?


선악을 판단하지 못하고 파괴충동을 억제하는 방법을 모르는 소년의 모습은 혼조 구라노스케와 같은 선상에 있다.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여전히 가부장제와 봉건제를 고집하는 벽지 마을에서 마치 왕처럼 군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은 추악하기만 하다. 낡은 인습을 통한 삐뚤어진 야망,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갖고 인간의 존엄성을 하찮게 여기는 그는 악마의 모습을 대신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권력에 몸을 조아리고 악습을 방관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살아 있다면 가해자의 입장으로 남았을 것이다. 순정도, 연민도, 동정도 마음에 품고 있을 때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함을 잊지 마시라.  


이 소설의 진짜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 미쓰기한테 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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